그래서, 쥬쥬베북스가 왜 필요한데?
한국에선 매해 6만 부 이상의 책이 출간된다. 하지만 독서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여러 산업으로 인한 산림의 훼손으로 지구는 병들고 있다. 이렇게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나무에게 미안해지는 이 출판이라는 일을 쥬쥬베북스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년 전 늦겨울, 출판사를 만들겠다는 결심 후에도 꽤 오랫동안 이 고민은 나를 따라다녔다. 나부터 설득이 되어야만 쥬쥬베북스의 이름으로 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쥬쥬베북스’라는 이름만을 손에 쥔 채 물었다.“그래서, 쥬쥬베북스가 왜 필요한데?”
고민은 치열했지만, 다다른 답은 거창하지 않았다. 수많은 책들 속 작은 출판사의 책은 여전히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대형 출판사가 만들어내는 멋진 책들을 사랑하지만, 복잡한 체계와 큰 규모에선 나오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엔 세상에 꼭 필요한 책들이 있고, 소규모 출판사를 통해 선보일 때 출판업과 출판물의 균형이 더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쥬쥬베북스는 그 어떤 출판사도 하지 않는 행보를 하겠다는 포부도, 세상에 없던 책을 만들어보겠다는 패기도 아니었지만, 소규모 출판사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갈 수 있을 거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3년 전, 쥬쥬베북스는 작은 확신을 발판삼아 세상에 한 걸음 내놓았다.
모두를 위한 책, 모든 어린이를 위한 책
하지만 국내엔 수많은 소규모 출판사가 있기에, 쥬쥬베북스의 책이 꼭 필요한 의미 역시 필요했다. 그래도 이 의미는 찾기 쉬웠다. 쥬쥬베북스를 처음 구상했을 때부터 출판사의 목표는 ‘모두를 위한 책’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 속에 이 세상 모두의 모습을 담진 못할지라도, 적어도 우리의 책에 상처받는 사람은 없도록 하자는 기준은 견고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모두’ 속엔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다. 모든 어린이가. 장애인, 비장애인, 성소수자, 비성소수자, 이주자, 비이주자를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가.
성평등 어린이책을 소개하는 『오늘의 어린이책-3호』(다움북클럼,오늘나다움,2024)에서 윤아름 교사는 루딘 심스 비숍 박사의 말을 인용하며 다양한 어린이 책의 필요를 말한다. “모든 어린이는 책 속에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비춰 주는 거울을 볼 수 있어야”하고, “책이라는 창문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소수자의 삶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다시금 이 글을 읽고 쥬쥬베북스의 필요를 생각했다. 쥬쥬베북스가 만들고 싶은 책은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거울과 넓디넓은 창문이 되어주는 책이다.
그렇게 소규모 출판사가 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책을 만들기 위해 쥬쥬베북스는 시작과 함께 다양성 어린이책 출판을 계획했다. 직접 유럽에서 원서를 사 오기도 하고, 전 세계 출판사의 카탈로그를 뒤지며 가장 적합한 책을 찾았다. 그렇게 발견한 보물 같은 책이 『할아버지가 사랑한 무지개』(해리 우드게이트, 김다현 옮김, 쥬쥬베북스, 2023)이다. 이 책은 2023년도 더 브리티시 어워드에서 어린이 일러스트 부문을 수상한 혜성 같은 신예 작가, 해리 우드게이트의 책이지만 한국에는 판권이 팔리지 않고 있었다. 추측건대 성소수자 당사자가 등장하고, 또 주인공들이 무지개 축제를 직접 만들어가는 ‘어린이 책’이라는 점에서 대형 출판사는 쉽게 도전하기 어려웠을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쥬쥬베북스는 어린이의 거울과 창이 되어주기에 이만큼 좋은 책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이 책은 다양성에 대해 은유적인 소개가 아닌 정확한 설명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개 축제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기념하고, 모든 사람은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고 또 어떤 성을 가졌든 평등한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함께 나눈”다고 말하며 어린이에게 긍정적인 거울과 세상을 향한 큰 창이 되어준다.
『할아버지가 사랑한 무지개』 출간한 후엔 이 좋은 책을 독자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우려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사랑한 무지개』는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특히 유치원 및 초등학교 교사분들이 수업을 위해서 구매해 주시거나, 꼭 필요한 책이었다고 말씀해 주실 때 이 책이 나왔어야 하는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쥬쥬베북스가 왜 필요한 지, 그 이유는 책이 나와 의미를 찾으니 더 선명해졌다.
대담하고 담대하게, 작은 대추의 큰 꿈
쥬쥬베북스의 이름인 쥬쥬베(jujube)는 대추의 영문을 뜻한다. 대추는 헛꽃이 없어,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가 열린다. 쥬쥬베북스의 어린이책을 만들 때 나의 마음도 그렇다. 허투루 만든 책은 없어야 한다는 다짐과, 대추처럼 옹골찬 책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함께한다. 그래서 쥬쥬베북스는 책을 만들 때마다 명확한 목적를 정한다. 어린이 그래픽 노블 『야옹』은 임신과 출산이 반려동물 파양의 주된 이유가 되는 가운데, 어린이와 반려동물의 씩씩한 우정을 담고 있다. 『향유고래를 훔쳐라』에는 향유고래를 가장 좋아하지만, 수족관에서 향유고래를 탈출시키고자 힘을 모으는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향유고래를 보는 것을 간절히 꿈꾸었어도 향유고래가 슬프다면 다신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어린이의 깊고도 순수한 마음은 어른을 반성하게 한다.
어린이 책의 주 독자층은 어린이이지만, 주 구매층은 보호자 혹은 교육자이다. 그렇기에 출판사는 자연스럽게 어린이보다 보호자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더 조심스럽고 더 소극적인 출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책에서 소규모 출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은 상상 이상으로 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또 책을 통해 세상을 감각하기에 어린이 책 속에는 더 대담하고 담대하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려져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다면 쥬쥬베북스가 오래 그 역할을 하고 싶다. 조금 덜 눈치 보고 더 과감하게 세상에 꼭 필요한 책을 내놓는 것이 쥬쥬베북스의 역할이 아닐까. 많은 어린이들이 쥬쥬베북스가 만든 책을 통해 더 다채롭고 다정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날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