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아직 너의 연락을 기다려” 시간이 멈춘 이태원의 그날, 그 후
[책 속 명문장] “아직 너의 연락을 기다려” 시간이 멈춘 이태원의 그날, 그 후
  • 유청희 기자
  • 승인 2024.10.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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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이후, 우리는 책임을 회피하는 책임자의 말을 줄기차게 들어왔다. 책임의 주체가 사라진, 아니 도망친 자리에서 이 부당한 상실에 가장 큰 책임을 지기로 나선 사람들이 누구인가. 바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가족들이다. 다시 말해, 이 책에 담긴 목소리는 가늠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것이면서, 그 슬픔을 껴안은 채 책임의 주체로 나선 믿을 수 없을 만치 대단한 이들의 이야기다.― 「여는 글」

 

병원에 도착해서 아이를 확인하러 영안실에 들어갔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우리 딸이, 옷이 다 벗겨진 채로 거기 싸늘하게 누워있는데… 너무 무서워서… 아이를 만지지도 못했어요.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이 우리 딸이라고 다들 말하는데… 나는 우리 딸이라고 말하는 게 무서운 거예요. 이렇게 봤을 때는 분명 우리 딸이에요. (...) 그때 안아줄걸… 안아줄걸….
-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서수빈씨의 어머니 박태월씨 이야기」 중에서

 

분향소로 사용할 천막 텐트가 막 내려오는 순간 다시 이미현 실장이 시민들에게 청했어요.

“시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지금 빨리 분향소를 설치해야 하니 도와주십시오!”

그때서야 시민분들이 막 몰려오셔서 경찰들을 막아주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유가족들도 함께 시민들하고 같이 몰려간 거예요.

막 밀어붙이면서 옆을 봤는데, 정말이지 진짜… 우리 유가족들의 모습이 죽기 살기의 마음, 결사 항쟁의 마음이었어요. (...) 그때 경찰들이 갑자기 당황해 막 몰려와서 막고, 밀고 이랬단 말이에요. 그때 우리 유가족 중에 한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우리가 애들을 이런 상태로 잃었는데 자식 같은 너희들을 이렇게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제 좀 물러나 주면 안 되겠니?”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봐주지 않아요: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씨 이야기」 중에서

 

재현이는 떠날 결심을 하고는 내 앞에서 굳이 안 해도 되는 수학 공부를 하는 시늉을 하고, 한동안 부르지 않았던 노래를 다시 불러주고, 가족들에게 보내는 긴 영상 메시지를 남겨뒀어요. 그 행동들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느껴져요. 아, 얘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설레고 좋기도 했지만, 가족들한테 정말 미안했구나. (...) “엄마 아빠 너무 사랑하고, 다음 생에도 나 정말로 엄마랑 아빠 같은 부모가 있었으면 좋겠어.”
- 「참사는 그 골목에 머물지 않았다: 이재현씨의 어머니 송해진씨 이야기」 중에서

 

2022년 8월 2일 밤, 네가 한국에 막 도착했을 때를 기억하니?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너는 사진을 찍어 보내며 걱정 많은 엄마를 안심시켰잖아. 2022년 10월 29일, 그 참혹한 날에도 똑같이 말했을지 모르겠다.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고 이태원에 구경 간다고, 갔다 와서는 나에게 그곳의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도 너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야.

나의 사랑하는 아이 알리야, 이제 영원한 안식 속에 편히 쉬렴. 더 이상 이태원 거리에서 사람들이 밀려드는 압박감에 고통받을 일도, 부러지는 뼈의 소리를 들을 일도 없을 테니.
- 「어머니의 편지: 알리 파라칸드씨의 어머니 하자르 파라칸드씨 이야기」 중에서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펴냄 | 416쪽 | 22,000원

[정리=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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