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가장 빠르게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파급력 있는 장르다. 지난 3일, 27년 역사를 지닌 ‘만화·웹툰 축제’의 근본 ‘부천국제만화축제’(이하 ‘부만축’)가 개최됐다. 오는 6일까지 이어지는 '부만축' 현장에는 공들여 코스튬 플레이(코스프레)를 준비한 코스어들과 만화인을 꿈꾸는 학생, 그리고 전문 만화인들과 나들이 온 가족 단위 시민들까지 축제를 빛내고 있었다.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 일대에서 열리는 ‘부만축’의 현장을 소개한다. |
# 가장 첨단의 한국만화
여성국극-남성 임신 소재
부천만화대상 특별전시관!
“헐, 이 남자 임신했나봐!” 한국만화박물관 3층에 있는 ‘부천만화대상’ 특별전시관. 남성 임신을 소재로 한 화제작,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이하 ‘안임신’) 전시를 찾은 한 관람객이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바야흐로 남성이 임신할 수 있게 된 2030년을 상상한 ‘안임신’ 속 ‘지옥’을 묘사한 체험관 안에서였다.
‘안임신’은 올해 부천만화대상의 신인상 수상작이다. 출산과 육아의 고충이 여성에게 쏠린 역사 위에 ‘남성 임신 신약 개발’이라는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은 블랙코미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매년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품을 부천만화대상으로 선정하고, 이를 ‘부만축’에서 소개하는데 ‘안임신’이 이번 주인공인 것. ‘안임신’의 기존 독자뿐 아니라 작품을 처음 접하는 방문객들의 웃음이 현장에서 터지고 있었다.
부천만화대상 대상작이자, 드라마로도 제작되는 만화 ‘정년이’ 전시는 단연 메인 콘텐츠다. 1950년대 이후를 배경으로, 그간 한국 주류 예술사에서 깊이 있게 조명되지 않은 여성국극과 그 주체들의 이야기를 곡진하게 담은 인기작이다. 전시회를 통해서는 여성국극 및 작품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의복 재현 및 ‘정년이’ 플레이리스트와 굿즈들도 감상할 수 있다. 만화와 웹툰은 가장 빠르고 참신하게 현 시대와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장르. 이번 전시는 가장 ‘첨단’의 문제의식과 소재를 서사화한 한국 작품들을 깊이 있고 공감각적으로 만날 수 있을 기회다. 메인 텍스트인 이 두 작품은 작가 대담 등 다양한 행사도 펼쳐질 예정이다. (5일-‘안임신’, 6일-‘정년이’) 이 외에도 이번 ‘부만축’에서는 한국만화박물관 1층의 이탈리아 만화전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 잘 팔리는 만화 서적 & 창작물 판매까지
굿즈 마켓과 페이스페인팅 등 다양한 체험 공간도 마련된다. 한국만화박물관 맞은편 비즈니스 센터(마켓관) 지하와 야외 부대를 통해서다. 또한 마켓관 지하 1층에는 만화 관련 입시 및 취업 상담을 위한 ‘대학존’도 준비돼 있으니 학생들도 참여할 법하다.
인형과 엽서 등 다양한 굿즈와 체험 부스가 준비돼 있지만, 서적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한산한 시간대인 평일(4일) 오전, ‘한림사’ 부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한림사는 외국 일러스트 전문 출판사이자, 일본 애니메이션 전문 출판사인 PIE international의 한국 공식 에이전트사다. 이날 매대의 90% 이상이 일본 원어로 된 책들이었다. 한림사 관계자는 “첫날부터 마켓을 열고 있는데 인기가 좋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니 책으로도 많이 사 가는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근처의 출판사 부스에 방문객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체 드로잉 서적 및 원어 만화책들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 ‘코스어’들의 향연 & 코스프레 체험까지,
5일 14개국 코스프레 팀 경연
만화인의 행사에는 핵심 주체들이 있다. 바로 자발적으로 만화·게임 캐릭터로 분한 코스어(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다. 오랜 시간을 들여 수준급의 헤어·메이크업으로 축제를 찾는 이들은 기획가들이 섭외한 인사들만큼이나 축제를 빛내고 있었다. 특히 ‘부만축’은 경기국제코스프레 페스티벌과 함께하면서 한국만화박물관 앞에 레드카펫(*촬영하고 싶다면 당연히 허락을 구해야 한다)이 마련됐고, 코스어들에게는 축제 무료입장을 지원한다. 주말인 5일에는 14개국 국가대표 코스프 팀의 퍼포먼스 경연도 펼쳐진다.
게임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인기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칼리’ 캐릭터가 된 ‘백시호’(닉네임) 코스어는 “부만축’은 많은 코스어가 찾는 장소다. 일러스타 페스 등과 함께하면서 (참여자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이어 “활동 자체가 즐겁지만, 내가 코스프레한 캐릭터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 때가 정말 좋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같은 게임의 ‘요네’ 캐릭터를 연출한 닉네임 ‘오전’ 코스어는 “10년 전부터 코스프레를 해왔는데 ‘부만축’은 처음”이라면서 “찾아보면 코스프레할 수 있는 행사도 적지 않고, 각자 스튜디오를 빌리거나 로케이션 촬영도 할 수 있지만, 함께 코스프레를 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축제”라고 했다.
코스프레가 아직 낯선 이들을 위해, 축제에는 코스프레 체험 및 포토 이벤트 등도 마련했다.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봐도 좋겠다.
# 마니아부터 가족 관객까지
혼자가 아닌 함께 즐기는 만화
이렇듯 마니아와 만화업계종사자들, 가족단위 시민 등 다양한 주체를 고려한 행사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행사장 밖에는 3,500여 권의 만화를 둘러 앉아 읽는 ‘야외만화방’과, 푸드트럭 등도 준비돼 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작품들의 무료 상영회(‘엉덩이탐정’ 5일 10시30분~12시)도 개최된다. 만화 팬들을 위해서는 다양한 사인회 및 작가 대담 및 애니메이션 관련 행사가 열리고, 각종 비즈니스 네트워킹도 펼쳐진다. 축제를 돌아다니다 지쳤다면 만화박물관 2층의 만화도서관을 혼자서 조용히 이용할 수도 있겠다.
지금 만화를 사랑하고 있다면. 혹은 만화라는 문화에 추억이 있다면. 가을바람을 맞으며 ‘부만축’에 가보면 어떨까. 한국 웹툰에 빠져 사회를 성찰해보거나, 혹은 과거에 사랑했던 작품들에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축제 일정과 내용은 '부만축'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