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휴일, 우연히 KBS 교향악단의 연주 영상을 보게 됐다. 홀린 것처럼 빠져들었다. 연주 장소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아름다운 선율의 연주만큼 돋보이는 건 지휘자였다. 그간 다져진 음악 내공과 살아온 삶의 궤적이 지휘자의 손짓과 희끗한 백발에서 그대로 읽혀졌다. 내 눈에 지휘봉을 든 그의 모습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을 손에 쥔 거룩한 신처럼 보였다.
엘리아후 인발(Eliahu Inbal). 신비한 지휘를 선보인 그의 이름이다. 그의 지휘와 KBS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 교향곡 11번은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날 나는 넋을 잃고서 전 악장의 영상을 모두 찾아 감상했는데, 특히 마음에 와 닿은 악장은 2악장이었다.
이유는 지휘자와 음악 말고도 또 있었다. 2악장 연주에서 팀파니 수석 연주자는 연주 도중 가죽이 찢어지는 일을 겪는다. 연주자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팀파니 연주가 쉬어가는 틈을 타 그는 재빠르게 악기를 교체했다. 그리곤 곡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을 다해 연주했다. 그 모습이 음악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에 감동받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이 영상이 널리 퍼지면서 팀파니 연주자는 아주 유명해졌다고 한다. ‘어떤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당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닥친 문제를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그의 삶의 태도가 모두의 귀감이 되었던 것이다.
KBS 교향악단이 연주한 교향곡 11번은 쇼스타코비치가 그 곡을 작곡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잘 묘사된 곡이다. 본래 작곡가와 연주자들은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음악의 선율에 담아낸다. 쇼스타코비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 시대의 배경과 분위기를 악보에 기록했다. 이 교향곡 11번에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러시아혁명 등을 겪으며 느낀 자신의 느낌과 사상이 반영돼있다.
특히 열다섯 개 교향곡 중 11번 교향곡은 러시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을 다룬다. 때는 1956년. 30년간 이어진 스탈린의 독재 정치가 끝난 후, 후르시초프가 정권을 잡을 때였다. 그는 그동안 시행되어 온 스탈린의 개인 우상화를 뒤집어엎을 만큼 파격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쇼스타코비치는 전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적 환경에서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당시 작곡된 곡이 바로 교향곡 제11번 ‘1905년’. 이 곡은 그 시기를 각 악장별로 나눠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 곡을 작곡한 그 시절, 지속된 패전으로 노동자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세금과 장시간의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고통 받고 있었다. 이에 시민 6만 명이 겨울 궁전 앞 광장에 집결했다. 이들은 비무장 상태로 황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평화적 시위를 펼쳤다. 하지만, 황제의 군대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이로 인해 4,000여 명이 사망하는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교향곡 중 2악장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직접 음악의 표제를 붙인 최초의 교향곡으로, 러시아 ‘피의 일요일’ 사건에서 교향곡의 모티브를 얻어 전진하는 민중의 목소리와 친위대의 총격, 비애의 장송곡까지. 당시 혁명의 모든 과정을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음악이 위대한 이유는 이렇듯 음표들을 엮어 시대와 개인의 정서를 다양하게 표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나아가 글과 그림과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감성들을 끌어낸다. 그래서 명곡 한 곡은 온 세상을 울리기도 하고 웃음으로도 이끈다. 그런 힘을 가진 게 바로 음악이다.그래서인지 빈 오선지를 채워나갈 때마다, 마치 글을 쓰는 기분을 느낀다. 이 오선지에 무엇을 표현해야 할까, 어떻게 음악을 이어나갈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한 작품이 완성되어 간다. 마치 글을 써나가는 것처럼.
어찌 보면 인생도 이 오선지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기쁨과, 슬픔, 분노, 희열, 증오 그리고 좌절. 또 이별과 사랑, 고통과 무기력... 이 모든 것들을 겪으며 개인은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만들어간다. 음악가의 경우 그 경험과 철학은 예술로 승화한다.
인간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진리처럼, 인생의 한 부분을 오늘도 걸어간다. 오선지 위에 기록되는 음표처럼. 자신만의 인생 항로를 향하여 오늘도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필자 역시, 지금까지 걸어온 걸음들이 있다. 이 걸음들을 오늘도 마음 속 오선지 위에 정성껏 그려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