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를 정한다. 바쁘게 블로그와 SNS를 오가며 꼭 가야 할 명소와 맛집 리스트를 추린다. (일면식 없는) 블로그 주인의 사적인 셀카까지 담긴 여행지 포스트를 끝없이 스크롤하면서. 이어 숙소와 동선과 교통편을 치밀하게 확인하고, 환전할 타이밍을 엿보다 비행기에 오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여행인가 소비인가.
현대인이 빠지는 딜레마다. 돈도 시간도 부족한 (평범한) 현대인들은 ‘실패 없는 여행’과 ‘관광지 도장깨기 여행’을 지향한다. 그뿐인가. 이미 모든 것이 상품이 된 글로벌 자본주의는 여행자를 '소비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먼 과거, 여행이란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나는 모험, 혹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이기도 했다. 다수의 지식인들이 여행기를 써왔던 이유일 것이다.
체코의 대문호인 카렐 차페크의 여행 산문집들은 이런 수많은 여행기의 계보 속에서도 매력적인 선택지다. 예컨대 대표작 『R.U.R』(전세계에 ‘로봇’이라는 단어를 소개한 책이기도 하다)로 이미 당대 유명 작가였던 그는 1924년, 영국에 입성한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영국 땅에 발을 내딘 순간 제가 영어를 하거나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얼른 가까운 기차 안으로 숨었죠.”
능청을 떨며 문을 여는 이 영국 여행기의 제목은 『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이다. ‘대놓고 다정하지 않은’ 건 영국인인 동시에, 영국을 바라보는 체코인 차페크 그 자신이기도 한 것 같다. 체코와는 다른 음울한 런던과 영국 시골 풍경을 둘러보며 그는 시니컬하지만 적확한 묘사로 독자를 키득거리게 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영국인은 대체로 재미없고 조용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인지 함께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술집 대신 선 채로 술을 마시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바를 만들었습니다. (...) 그래서 영국의 책들은 400쪽을 가뿐히 넘어가죠.”
“사람들은 시골로 떠나기 위해 일요일이 있는 거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시골로 떠나는 건 영국의 일요일이 끔찍하게 두려워서입니다. (...) 도망칠 수 없는 이들은 하다못해 기도와 노래로 이 끔찍한 하루를 견디기 위해 예배당으로 향합니다.”
그에게 사람 간의 교감이 없는 런던의 거리는 “그저 삶이라는 물줄기가 집에 닿기 위해 거쳐가는 홈통 같은 곳”이며, “사람들은 거리에서 삶을 살지 않”는다. 나아가 산업혁명 이후 교통량이 급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는 그에게 “솔직히 무서웠”다. 차페크의 시니컬함은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외국인이라도 영국에 살고 있거나 영국 책을 읽는다면, (...) 영국인들을 금세 사랑하게” 된다고 언설한다. 그러나 이는 뼈 있는 지적을 위한 밑밥이다. 이어서 그는 말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땅을 밟고 있는 한 영국인과 친구가 되기는 어렵”고, “그 까닭은 바로 영국인들이 다른 땅을 밟으려 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라고. 과거 제국주의를 떨쳤던 영국인들의 특권적인 위치(다른 나라를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됨)와 문화를 꼬집는 셈이다.
그렇다면 차페크는 시니컬하기만 한 사람일까? 영국 여행기와 함께 번역된 스페인 여행기 『조금 미친 사람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책의 주홍빛 표지가 암시하듯, 스페인에 간 차페크는 갑자기 ‘온탕’에 뛰어든 사람 같다. 열정적인 스페인 문화와 사람들을 향해 경탄을 숨기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거리가 최고의 박물관”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스페인의 구두닦이부터, 고야와 벨라스케스의 그림까지 다양한 풍경과 유산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기록한다. 1920년대 지식인 남성답게 ‘이국적인’ 세비야 여성에 대한 묘사는 하품이 나오지만 말이다.
“구두닦이는 스페인의 전국적인 직업이다. (...) 스페인식 구두닦이는 태국의 전통 춤처럼 손으로만 행해진다. 춤추는 사람이 당신 앞에서 무릎을 꿇는데, 이는 당신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공연을 연다는 표시다.”
영국과 스페인 여행기 두 권을 나란히 읽으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여행의 태도만큼은 일관된다. 차페크는 관광명소와 규정된 문화유산과 예술작품만을 ‘여행’하지 않았다. 살펴봤듯이 차페크는 거리에서 만난 구두닦이의 손놀림, 스페인 가정집의 창살 모양과 플라멩코 댄서, 그리고 런던의 공기와 거리 문화까지 중요한 여행의 장소로 봤다. 익숙해서 의미 없다고 여겨온 것들이 그의 시선에서 개성적인 문화적 자료가 되고, 여행지에서 피어나오는 통찰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만약, 차페크가 2020년대의 한국을 여행한다면 어땠을까. 스타벅스와 맥도널,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똑같은 풍경에 일침을 날렸을까? 하지만 그 안에서도 고유의 풍경을 포착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약간은 화가 나있는 채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서울집중적 사회와 노동구조를 비판했을 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영국에서 밀집된 인파를 “무서워”했던 차페크이니 부디 출퇴근 시간 지하철은 타지 않기를. 그럴 일은 없겠지만.
카드를 긁어야만 지속되는 여행, 또 ‘관광지 도장 깨기’식 여행에 지쳐있었는가? 그렇다면 100년 전 대문호의 글로 여행에 대한 신선한 감각을 되살려 보면 어떨까. 차페크 역시 이렇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독자여, 익숙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보거나 다루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사물과 사람 간의 다양성은 우리 삶의 지평을 넓혀준다.” (- 『조금 미친 사람들』 중에서)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