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되레 선명해지는 생의 가치에 대해
‘죽음’ 앞에서 되레 선명해지는 생의 가치에 대해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9.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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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은 누구나 자신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존중되는 분위기 속에서 맞이하고 싶을 것이다. 원하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조용하고 평화롭게,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생의 마지막에 내가 있을 장소가 ‘호스피스’라면 어떨까.

“호스피스가 뭔데? 호스피스 가면 다 죽는 거 아니야?” 아마 대부분 호스피스라고 하면 막연하게 임종 전에 가는 곳, 입원하는 순간 머지않아 죽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노인 비율이 높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할 수 있으려면 완치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 혹은 그와 비슷한 정도의 몸 상태여야 한다. 그래서 그러한 이야기가 생기고,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 ‘호스피스에 가면 다 죽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은 임종을 앞당기거나 임종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의미의 호스피스, 즉 임종간호란 의학적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에서 받던 치료를 중단하는 대신, 인생의 마지막 나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한 보살핌을 받는 활동을 뜻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임종 전까지 삶의 질을 높이는 곳이, 바로 호스피스다.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이자 책 『삶이 흐르는 대로』의 저자는 환자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곧 삶을 되찾는 방식이라 여기며, 수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느끼고 경험한 바를 책에 담았다. 그래서일까.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끔 만든다. 삶의 끝자락에 선 이들이 죽음을 앞두고 가장 후회하는 일, 가장 그리운 사람, 가장 소중한 것을 반추하는 저마다의 이야기에는 ‘영원하지 않은 인생의 항로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후회 남을 일들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이라는 삶의 진실을 깨달으면서.

그들을 보고 있자면 처지가 어떻든 간에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단 사실을 매번 깨닫게 됐다. 어떤 울타리도 자연의 섭리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만큼 튼튼하진 않았다. 죽음이 임박하면 사람은 모두 한결같이 같은 걸 원했다. 그건 바로 관심과 위로 그리고 유대감이었다.

저자는 수년간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며 때론 손을 놓는 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환자들을 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몸소 깨닫는다. 그리고 이를 인정하고 나자 환자들과의 관계도 새롭게 쌓아가게 되었다. 과거에는 병실을 돌아다니며 말 한마디 없이 약을 건네주기 바빴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환자들의 곁을 지켜주는 것, 위로하며 연대하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환자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한다.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지, 죽음을 앞두고 중요해진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지.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렇게 나눈 수많은 대화가 저자에게 쌓여 어느샌가 그녀의 삶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나는 다양한 종교적 배경이 있는,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환자를 여럿 간호하면서 중요한 건 종교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이라고 믿게 됐다. 종교가 있든 없든 근사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을 수없이 봤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찾는 일이다. 그게 자신에게 뭘 의미하든 말이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삶의 끝자락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삶을 갈무리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은 사람, 사후 세계에 대한 자기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저 생계 수단으로 선택한 간호 일이었지만 삶과 죽음에 관해 묻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많은 저자에게 이 일은 점차 사명처럼 다가온다. 시간이 흐르며 낯설었던 업무도 점차 익숙해지고 환자들을 대하는 일도 점차 자연스러워진다. 병을 안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던 환자들도 따뜻하고 다정한 저자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깊은 속이야기를 꺼내고, 간호사로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더 큰 위로와 사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고 경험이 많아져도 정든 환자들을 떠나보내는 일만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때마다 저자는 언젠가 병원에서 들었던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한때 깊이 사랑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깊이 사랑한 모든 것은 우리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책은 오래도록 금기시되어 온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희망을 싹틔우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기 시작하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말과 행동이 바뀐다. ‘잘 죽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의 완성임을 보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되기를.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큼 흔하고 중요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죽음은 삶을 변화시킨다. 여러분의 삶에도 죽음이 찾아온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기 바란다.”

- 스티브 잡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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