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대체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최근, 주변 지인 여성의 사진을 제공하면 기존 음란물과 합성해주고, 서로 공유하게 하는 거대 텔레그램 채널에 수많은 이들이 가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한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한 채널에는 40만 명이 넘는 가입자가 있었을 정도다. 때문에 딥페이크 AI 기술과 그로 인한 성범죄 처벌 기준 마련이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AI’만이 아닌 듯하다.
그 남자는 왜 현실 여성을 ‘농락’했나
사실 딥페이크 성범죄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스타들을 대상으로도 만연해왔다. 예컨대, 세계 딥페이크 영상물의 주요 피해자는 일찍이 K팝 여성 아이돌이었다. 또한, 지난 1월 해외에서는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를 대상으로 무분별한 성적인 AI 사진 생성 문제가 공론화된 적 있다. 유의미한 점은, 이때 단순히 딥페이크 기술 분석이 아닌 피해의 파장과 가해가 주로 젊은 남성 세대에게서 일어나는 동기를 언론이 주목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테크 기자로 활동했던 로리 시걸은 얼굴뿐만 아니라 목소리, 신체 등 내밀한 특성까지 AI가 모방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테일러 스위프트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한 교수와의 대화를 가져와 ‘분노한 젊은 남성들이 (여성들의) 거절을 건전하게 처리하지 않고, ‘기술’을 이용해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화한다. 특히 그는 이미 10대들의 사회에서 딥페이크물이 형성되는 것에 주목하며, 이 기술이 새로운 세대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형성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비슷한 일이 지금 한국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CNN, 2024.01.31, Opinion: The Taylor Swift AI photos offer a terrifying warning)
신기술 따라 바뀌는 여성-몸의 ‘포르노화’
‘딥페이크와 AI’. 손쉬운 신기술로 옮겨가며 그 피해가 전방위적으로 생겨났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 여성의 사적인 몸을 ‘콘텐츠화’하면서 즐기고, 기술을 통해 여성의 고통과 굴욕을 즐기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도 반복돼온 것이다. 예컨대 이번 사건의 ‘딥페이크’ 자리에 ‘초소형 카메라’를 넣어보자. 2010년대, 초소형 카메라가 보편화되며 여성 시민들의 몸과 신체활동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활동이 아닌 포르노 콘텐츠화됐다. 지하철 계단과 학교, 화장실, 숙박시설 등에서 촬영되며 음란물로 둔갑했다. 현실 세계 인간의 몸이 근거리의 남성들에 의해 포르노화되면서 여성들은 일상과 관계에서 불편함과 불안, 공포에 직면했지만 이 불안함의 반응에 돌아온 것은 구조적 문제 해결의 연대가 아니라 ‘모든 남성들을 가해화하지 말라’라는 구호와 ‘지나치게 예민한 여성’이라는 프레임이었다. 그렇게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이 일상 곳곳에서 ‘렌즈’를 의식하며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와 분노 속에 살아간다.
짚고 갈 점은, 이렇게 여성의 현실을 포르노화한 불법촬영물과, 가상의 포르노(혹은 여성에 대한 불법촬영물을 원재료로 삼아 AI가 생성한)와 현실 여성의 사적 정체성을 결합한 딥페이크 성범죄물은 ‘한 명의 남성’이 ‘보는’ 데 존재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 시민들의 사적인 행위/몸을 기술을 통해 포르노화하며 우월감과 권능감을 느끼는 것, 나아가 다수의 가해자 남성이 모여 공유하고 ‘능욕’하는 것까지가 핵심 콘텐츠에 포함된다.
“남자는 여자라는 타자를 만들고, 이 타자에게 우위를 점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수많은 '남자들의 방'은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하며 서로의 남성성을 확인, 승인, 관리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남성성의 본질'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이를 확인해줄 타자인 여자, 그리고 서로를 주체로 승인하는 또 다른 남자들은 '남자들의 방'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의 방은 '남자'의 방이 아닌 '남자들'의 방일 수밖에 없고, 남자들의 방에 여성혐오는 필수적이다.”
책 <남자들의 방>은 이러한 다종다양한 불법촬영물이 공유되는 단톡방을 비롯해, 아주 오랜 역사의 ‘룸살롱’, 그리고 디지털 기반의 벗방과 N번방 등이 결국 한 명의 남자가 아닌 ‘남자들’이 있어야 성립된다는 데 주목한다. 남성 다수가 모이는 이러한 ‘방’들과 이곳에서의 ‘공모 행위’를 통해 이들 남성들은 (허구의)‘남성성’을 획득하고, 여기에 꼭 필요한 것이 ‘여성’이라는 것.
딥페이크 기반의 ‘지인 능욕방’도 마찬가지 아닐까. 폭력의 방식과 수위는 다르고, 그 ‘몸’이 현실의 몸이 아니더라도 본질적인 문제는 같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들이 '또래 남성들' 사이에서 '놀이'처럼 번졌던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또한, 10대가 주 피해자인 이번 딥페이크 범죄의 경우, 가해자들은 ‘여성이 사는 곳/활동하는 장소/나이와 이름’을 공유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상 세계'에서만 끝날 수 있는 위협일까?
딥페이크로 인한 성범죄 처벌 기준 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유구한 이 ‘남자들의 방’과 가해자 연대를 문제화하지 않으면 기술이 변할 때마다 똑같은 사건은 음지에서 반복될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남자들의 방’의 연령대가 10대로 낮아진 상황을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게다가 딥페이크 텔레그램 방은 철저하게 기성 세대의 수익화된 시스템 안에서 움직였다. 구매 금액이 높아질수록 할인율을 더하는 도박성 게임과 유사한 프로세스를 구축하거나, 다단계처럼 지인을 추천하면 할인도 해줬다. 다수의 10대 가해자들은 이렇게 스마트폰 하나로 ‘성구매’ 방식을 손 안에서 학습해갔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는 여성 착취의 역사와, 자본주의 문제가 신기술을 등에 업고 전방위적으로 불특정 여성, 무엇보다 10대 여성이 살아가는 일상까지 집요하게 파고든 문제다. 그런데도 AI가 만든 이미지이기에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언제든 피해 선상에 놓일 수 있는 여성들의 불안함의 표명을 전체 남성에 대한 ‘잠재적인 가해자 취급’이라고 느낀다면 이는 여성들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으며,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노의 방향은 가해자를 향해야 하고, 가해자를 키워온 사회에 질문해야 할 때다. 미래 사회를 더 큰 지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