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향기] 경청의 도서관, 우리 지금 만나요
[사서의 향기] 경청의 도서관, 우리 지금 만나요
  • 이수경
  • 승인 2024.07.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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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평택시안중도서관 관장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6, p.26)의 말이다. 모든 이들을 환대하는 도서관은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낯선 곳이다. 도서관 이용 경험이 없는 분들이 편안하고 손쉽게 도서관 서비스를 접할 수 있도록 지역 주민과 도서관이 함께 나섰다. 그 여정과 만남을 보여주려 한다.

첫 번째 만남은 혼자 지내거나 거동이 어려워 요양원에서 지내는 분들을 위한 그림책 프로그램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은 책이 소통에 얼마나 좋은 매체인지 알려 준다. 거동이 불편함에도 눈빛, 표정, 작은 몸짓으로 그림책을 들려주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애틋하다. 말씀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은 책 내용이나 그림을 보며 당신의 삶을 들려준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노인 돌봄은 환경 조성, 마음 다독임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로 사십 대에서 칠십 대로 이뤄진 그림책 봉사단과 노인들의 만남은 지역사회 중장년과 노년층이 만나 느슨한 관계의 돌봄을 주고받는다. 중장년들은 그림책 활동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효능감을 되살리고 그림책을 공부하며 노년을 대비한다. 요양원에 계시는 분들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이들이 있어 외로운 시간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그림책을 매 개로 말문을 틔우고 감각을 새롭게 깨운다.

두 번째 만남은 도서관 구술 사업이다. 2015년에 시작한 이 사업은 시민이 지역사 기록의 주체가 되는 마을 아카이브 활동이다. 지역의 급격한 변화와 개발로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잊힐 어르신들의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첫발을 뗀 지 올해 십 년을 맞이했다.

‘역사를 스스로 쓸 수 없는 사람들,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여서 굳이 쓸 생각이 없었던(한국구술사연구회, 『구술사 아카이브 구축 길라잡이 1 : 기획과 수집』, 도서출판선인, 2014)이들의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청소년,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구술 기록 프로그램 외에 마을 트레킹, 마을 사진 찍기와 오감탐방, 마을 정원 만들기, 청소년& 어르신 마을소풍, 경로당을 방문하여 구술 어르신 섭외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청소년, 시민기록가,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 하였다. “나 산 거 뭐 들을 게 있어...... 그땐 다 그렇게 살았지”, “내 얘기...... 들을 만했어?”라며 되묻는 할아버지, 우연히 도서관에서 섭외한 두 절친 할머니의 삶, 한 평생 간직한 연애편지를 내어놓은 분도 있었다. 삼십 년, 오십 년, 칠십 년 지은 농사, 배 농사, 전통시장의 노포, 이발관 이야기 등 지역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야기들이 옛 사진과 함께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사업을 진행하며 이 지난하고 평범한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고민하기도 했다. 『누구나 마을 아카이브』 이현정(이영남 외 7인 공저, 『누구나 마을 아카이브, 더페이퍼』, 2018, p.66)은 "공동체 아카이빙은 마을 사람들의 경험, 중요한 의미, 마을 사람들과의 교감이 꼭 기록으로 남는 것은 아니"라며 "마을기록자가 지금 마을 분과 이야기를 하는 그 과정 자체를 자신의 기록 활동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기록 개념의 확장"이라고 말한다. 마을 아카이브의 현장에서 기꺼이 이야기를 들려준 마을 어르신들, 그 이야기에 푹 빠져 귀를 기울인 마을 기록가들, 함께 발로 뛴 사서들, 그들이 함께한 그 순간의 공감, 눈물, 웃음, 교감 그 모든 것들이 기록 개념의 확장으로 우리 지역 구술 아카이브의 의미임을 되새긴다. 구술자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있어 자존감을 회복하고 마을 기록가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쓰며 자기표현의 결을 다듬고 지역사 기록의 주체가 된다. 지역 설화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시민은 "16년간 이곳에 살았지만 언제 떠나도 무방한 철새로 살았다. 7개월 간 마을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며 이곳을 사랑하고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소회를 남기기도 하였다.

도서관 구술 사업은 마을에서 만나 이야기 하고 듣고 다시 쓰며 출판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술자로 인연을 맺은 할머니들과 그림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로 내 인생의 한 장면을 소환하거나 지역 설화와 민담을 웹툰이나 그림책으로 재창작하는 등 다양한 리터러시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AI가 많은 것들을 대체할 것이라 하고, 불확실성을 견딜 수 없는 현대인들이 불안과 걱정에 휩싸인 시대. 책을 통해, 기억과 기록을 통해 지금 이곳에서 느슨한 연대와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작은 몸짓이 마을의 삶, 지역의 일상을 변화하는 출발선이라고 여긴다. 신영복은 『담론』에서 “내가 징역살이에서 터득한 인간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봅니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을 최고의 독서'라고 생각했습니다”(D.251)라고 하였다. 올해 우리 도서관은 또 다른 이야기를 '독서'하기 위해 시민들과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경청의 도서관, 우리 곧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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