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니
지혜니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4.06.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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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동성의 눈에도 여성이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 있다. 처음엔 외모가 눈에 띄지만 이보다 더 정이 가는 것은 인성이 반듯할 때다. 이때 사람을 겪어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으로만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대단한 독심술을 지녀서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아니다. 그냥 어림짐작이랄까. 이 나이 이르고 보니 처음 사람을 대할 때 대화 몇 마디 나눠보면 대략, ‘어떤 사람이겠구나’라고 감이 잡힌다. 물론 이런 시각이 다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타인을 내 마음처럼 생각하는 성향 탓인지 이럴 경우 간혹 오류도 있다. 외모에 의하여 상대방을 별 경계심 없이 대해온 게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다. 지인인 그녀는 보기에 매우 수더분해서 단박에 미더움을 지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판단에 상당한 모순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보다 자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함부로 재는 일이었다. 나중엔 그녀가 부정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는 것도 알게 됐다. 심지어 피해의식에 의한 망상증 때문인지 매사 의심증이 많았다. 사람을 대할 때도 먼저 손익 계산을 따지고, 상대방 진실을 외면했다. 가식과 위선이 난무하는 현 세태에 진심만큼 귀하고 소중한 게 어디 있으랴. 그러고 보니 인간관계 시 상대방에게 진심이 안 통할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그러나 추호도 의심치 않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겐 한없이 정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필자 같은 경우 경륜이 깊은 사람일수록 두터운 신뢰감을 지닌다. 이는 그동안 풍부한 인생 연륜에 의하여 지혜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의해서다. 때론 이러한 생각도 빗나가기 일쑤이긴 하다.

실은 삶 속에서 남다른 지혜를 갖추기란 말처럼 쉽진 않다. 언행을 사람답게 처신해야 하는데 불완전한 게 인간 아니던가.‘지혜’란 단어를 논하노라니 스무 살 무렵에 났던 사랑니에 관한 일이 문득 떠오른다. 이 치아는 잇몸 맨 구석에 불쑥 솟아나 제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걸핏하면 그것에 음식물도 자주 끼어 치아가 썩곤 했다. 또 있다. 입안 맨 구석에 나 있어서 칫솔이 제대로 안 닿아 양치질이 부실했다. 이 사랑니가 날 때는 잇몸도 뻐근하고 아팠다. 급기야 이것이 얼마 안가 충치가 되었을 땐 시도 때도 없이 치통으로 필자를 괴롭혔다. 

이앓이는 겪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잘 안다. 그럼에도 치과는 멀리서 간판만 보아도 선뜻 걸음이 내키지 않는 곳이다. 필자 같은 경우 어려서 치아를 갈을 때 일이 늘 머릿속을 맴돌아서 더욱 그렇다.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던가. 이가 흔들려서 생각 끝에 손으로 빼려고 작심했다. 그러나 흔들리는 치아는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어머니 몰래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입을 딱 벌린 채 힘껏 치아를 뺐다. 이 때 이가 빠지자 무슨 연유에서인지 잇몸에서 피가 솟구치며 방문 창호에 뿌려졌다. 그것을 보자 어린 마음에 덜컥 겁이 났다. 그 후 이를 발치하는 일이라면 왠지 두려웠다. 

이런 어린 날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한 채 젊은 날 사랑니를 빼러 갔을 때 일이다. 치과 젊은 의사는 잔뜩 주눅이 든 채 의자에 누워 온몸을 웅크리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가 보다. 이런 말로 위로를 해왔다.

“사랑니가 났다는 것은 이제부터 철이 든다는 뜻입니다. 그래 사랑니를 지혜니라고도 칭하지요. 어찌 고통 없이 사람이 성숙할 수 있나요? 어른스러워진다는 의미에서 사랑니가 나온 것이니 어쩌면 반가운 일입니다.”라고 말이다.

당시 의사 말이 사실이었는지 몰라도 성인인 20대가 되자 자주 사랑니가 몇 개 더 나와서 이것을 모조리 뺏던 걸로 기억한다. 돌이켜 보니 젊은 날 그 의사 말에도 어폐가 있다. 지혜니인 사랑니가 그동안 여러 개 났었으면 지금쯤 내면이 한껏 무르익어서 매사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면은 미성숙하잖은가. 

흔히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이 말도 맞는 성싶다. 여태껏 삶을 살면서도 어느 것이 정답이고, 또한 오답인지 정확한 판단을 못 내리기 예사였다. 지난 세월 인생 답안지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 채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이로 보아 얼마나 우매했던가. 

그러나 요즘 독서를 습관화 하고부터 책 속에서 삶의 진리가 숨어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눈만 뜨면 책장을 펼치자,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난날 조급함에 시달리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져서 마냥 여유롭다.

그래 요즘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 읽으며 폭염도 잊는 중이다. 이때 좋은 책 내용은 애써 필사(筆寫)도 한다. 이렇듯 독서에 새롭게 도전하노라니 이 또한 인생의 지혜로움을 터득하는 한 방편으로 작용해줘서 기쁘다. 어디 이뿐인가. 한 권의 책 속에서 삶의 행복과 마음의 진선미(眞善美)까지 얻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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