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여성들이 죽었는데...제대로 ‘집계’되지 않은 여성 폭력
매달 여성들이 죽었는데...제대로 ‘집계’되지 않은 여성 폭력
  • 유청희 기자
  • 승인 2024.06.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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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대 남성이 사귀었던 여성을 강남역 인근 옥상에서 살해했다. 지난 4월에는 경남 거제에서 한 여성이 과거 교제한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고 입원했지만 사망했다. 지난 3월, 경기 화성에서는 여성의 이별 통보에 분개한 남성이 여성을 죽이고, 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지난 1, 2월도 여성들이 친밀한 남성에 의해 살해됐다.

여성들이 친밀했던 누군가에 의해 맞거나 죽고 있다. 한국 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138명, 살해 위협받았으나 살아남은 여성은 311명(살인 미수)이다. 합하면 총 449명. 시간으로 환산하면 하루도 안 되는 열아홉 시간에 한 번씩 여성이 죽거나, 살해에 버금가는 폭력을 당한 것이다. 이 수치는 경찰청의 공식 집계가 아니다. 단체가 언론 보도를 조사해 집계한 수치다. 이에 대해 단체는 '여성 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가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위 언급한 교제 살인 피해자들 중 다수는, 살해당하기 전 폭력 단계에서부터 경찰에 적극적으로 신고하며 위험을 알렸다.

449명이 지난 한 해 친밀한 남성에 의해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왜 교제 살인을 포함한 '여성 폭력과 살인'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와 분석은 이렇게 부족할까? 통계 공백은 더 있다. 다수의 매체에 따르면, 교제살인의 가해자 및 검거 인원은 별도로 집계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ᅠ여성가족부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따라 데이트폭력 등ᅠ집계를ᅠ포함한 '2022년 여성폭력통계'를 발표한 적은 있으나, 흩어진 데이터를 모은 것에 그치며 구체적인 분석과 대책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교제폭력 저질러 붙잡힌 5만6천명, 구속된 건 2%뿐, 2024.05.26, 여성신문).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 우리를 둘러싼 도시 설계, 경제, 정치, 환경 등이 여성의 데이터를 누락하고 남성을 기본 값으로 두고 설계됐다는 ‘젠더 데이터 공백’을 설명한다. 사소한 예로, 성인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제작된 피아노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연주할 때 손가락이 찢어지는 느낌을 감수한다. 여성 손에 너무 커서 자주 떨어뜨리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남성 성인의 사이즈에 맞춘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소한 예이지만, 젠더 데이터 공백은 생명의 위험을 주기도 한다. 자동차 충돌 실험은 대개 남성의 신체 사이즈의 인형으로 안정성을 테스트해 왔다. 때문에 신체가 다른 여성이 사고가 났을 경우 다칠 확률은 47% 높아지고, 사망 확률은 17% 높아진다고 책은 말한다.

“인류 역사의 기록 대부분에는 데이터가 누락되어서 생긴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다. (...) 젠더 데이터 공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그것이 대개 악의적이지도, 심지어 고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온 사고방식의 산물일 뿐이기에 일종의 무념이라 할 수 있다. 남자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고, 여자들은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중 무념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인간이라 통칭하는 것은 남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 머리말 중에서)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남성을 기본값으로 구축된 현실의 물리적인 세계를 명징한 사례들로 다양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결국 ‘젠더 데이터 공백’의 핵심은 이것이다. 세상은, 이 세상의 절반인 여성의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아 왔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식을 책을 넘어 거칠게 확장해 보자면 이렇다. 남성이 당연하게 디폴트였던 세상은 여성의 몸과 경험, 피해와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은 결과, 많은 폐해를 만들어왔다. 이는 물리적인 세계가 아닌, 법안 마련과 사회문제를 해석하는데도 적용되는 관점이 아닌가.

매년 수많은 여자들이 교제폭력과 살인뿐 아니라 길을 걷다 성폭력의 위협을 받거나 맞거나 죽는다. 이런 사건들은 대중의 공분을 일으키지만, 여성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해석되고 통계화하며, 나아가 의제화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최근 잇달아 여성들이 살해된 교제 살인 사건에 피해자를 추모하면서도, 이 사건이 ‘연인 간의 싸움과 집착이 만들어낸 사건’이지 여성이라는 이유나,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성차별적인 통념과 닿아있는 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성 말고 남성도 많이 죽는다고 이야기한다. 맞다. 여성 말고도 남성도 많이 죽는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다수인 여성 피해자들을 지우고, 눈에 띄는 (2019년 고유정의 남편 살해 등) 몇몇 남성의 피해만 말하는 것은 완벽하게 맥락에서 비껴나간다. 여성 살인과 폭력은 반복되어 온 사회문제이며, 역사의 문제다. 개별 사례에 대한 분노에서 그치지 않고, 큰 눈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존재하는 문제를 받아들이고, 공백으로 남은 데이터를 메워 분석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기본이다.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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