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칼럼] 당신의 모양
[기자의 칼럼] 당신의 모양
  • 유청희 기자
  • 승인 2024.06.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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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 시절, 나는 두 눈에 우주를 품은 듯 반짝이는 신인배우를 인터뷰했다. 당시 많이 해보지 않았던 인터뷰라 긴장했지만, 막상 질문을 시작하니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나는 내 앞의 이 배우가 진심으로 잘됐으면 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을 질문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정말 쾌적한 한 시간이었다. 의외로 나, 글쓰기보다 인터뷰 체질인지도? 망상했다.

망상은 절망이 됐다. 인터뷰 녹취를 풀며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당시는 영화·방송계에 여성 배우들의 배역이 한정적이며 더 다양한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는 담론이 커지고 있을 때였다. 예컨대 젊은 여성 배우는 대체로 (캐릭터의 깊이와 활동 반경이 한정적인) 로맨스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중년 여성 배우에게는 엄마 역할만 들어오는 문제들 말이다. 나는 이 변화의 목소리에 미약하게나마 힘을 주고 싶었고, 그 배우가 성장했을 때 다양한 역할을 하길 바랐다. 그래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며 ‘스릴러’나 ‘액션’에 도전하고 싶다는 대답을 묘하게 유도하고 있었다. 그것 말고도 부끄러운 질문은 있으나, 다 적지 않겠다.

그때 알았다. 인터뷰는 무서운 것이구나. 상대의 원래 모양을 언어를 통해 기자 마음대로 깎을 수도 있구나. 특히 아직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가 단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더더욱. 물론 내가 한 일은 범죄도, 윤리에 크게 어긋나는 일까지도 아니지만 창피했다.

그 후 인터뷰는 좀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내 언어를 말하기 전에 상대를 듣고, 상대의 온전한 모양을 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신인배우가 아닌, 이미 자신의 언어가 발달된 내공 있는 창작자를 만날 때는 달랐다. 내가 어떤 질문을 가져가도, 전문가들은 호기롭게 자기만의 언어를 꺼내들었다. 화살 같은 질문들을 가뿐하게 받아들었고, 그 질문은 인터뷰이의 언어를 타고 방향을 틀어 생각지도 못한 세상으로 날아갔다. 그런 문장들에는 독자들과 사유할 만한 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인터뷰는 인터뷰이와 함께 글을 쓰듯 생각을 산출할 수 있어 즐거웠다. 뭐, 나만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늘 조심했다. 상대의 모양 보다 내 언어와 욕망을 앞세우지 않을 수 있게.

첫 직장을 나오고 나서는 인터뷰가 아닌 글쓰기를 해왔다. 그러다 <독서신문>을 만나면서 다시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고, 사회생활도 더 많이 했으니, 좀 더 나아졌겠지? 하는 생각은 바로 소멸했다.

두려운 것은 더 많아졌다. 특히 인터뷰를 잘하고 들어와 녹취를 풀고 편집할 때 공포가 몰려왔다. 내가 인터뷰이의 삶을 축소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반대로 당신의 아주 작은 부분을 과장해서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6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인터뷰한 당신의 삶을 넓게 펼쳐내려면, 그러면서도 독자에게도 당신에게도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려면 나는 무엇을 취사선택해야하는가? 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인터뷰가 끝난 지금에서야 생각나는가? 나는 뭘 하는 인간인가?

활어처럼 살아있는 말들을 보며 나는 무딘 칼을 들고 서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건 어제도, 그제도 느낀 공포였다. 인터뷰할 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글쓰기를 할 때 매번 겪는 감정이자 필수적인 검열의 과정이었다. 이를테면 이렇다. 기사로 사회 현상을 전달하며 나는 생각한다. 내 작은 언어로 세상을 축소하고 있지 않은가. 책의 등장인물의 삶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갈취해 다른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시선과 현상 사이의 충돌. 하지만 그 긴장 사이를 헤매며 문장은 조금씩 정확해지고, 원고는 완성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음, 어쩔 수 없군. 대충 쓰겠다는 말이 아니다. 어쩌면 이 두려움은 굳이 글쓰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거 아닌가. 가끔, 우리는 연인과 친구와 가족의 모양을 그대로 보지 않고 내 생각대로 깎고, 다듬고, 혹은 과장하거나 외면한다. 상대의 온전한 모양을 그대로 봐주는 사람은 너무나 드물다. 어쩌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생각한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깎고 오해하며 더 재미있는 것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혹은 반대의 파국도 가능하다). 중요한 건 온전히 그리는 것이 불가능한 상대의 모양을 알기 위해 다가가는 거. 내가 상대를 왜곡할 수 있음을 알고 그 긴장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거, 그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 공포를 잃고 싶지 않다.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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