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김미경 은평구청장 “삶의 질이 채워지지 않은 개발은 공허해요”
[명사에게 듣다] 김미경 은평구청장 “삶의 질이 채워지지 않은 개발은 공허해요”
  • 유청희 기자
  • 승인 2024.05.28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로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 전 세계 많은 도시들이 ‘문화예술도시’라는 슬로건으로 변화를 꿈꿔왔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문화예술’은 ‘골칫거리’가 된 모양이다. 연일 문화예술 지원금 삭감 뉴스가 들려왔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본래 문화예술 분야는 ‘먹고사는 문제’에 밀려왔다는 것을.

하지만 서울시 은평구는 본격적으로 ‘문화’를 통한 변화를 꿈꾸고, 실현 중이다. 2026년에는 국내 유일의 국립한국문학관이 은평구의 옛 기자촌 자리에 들어선다. 수색증산 개발구역, 불광천 방송문화 거리 조성, 혁신파크를 지나 진관동 국립한국문학관으로 이어지는 문화벨트로 일자리 창출 효과와 문화 발전을 기대 중인 것. 그 변화를 이끌고 있는 김미경 은평구청장을 만났다. 현장 곳곳을 직접 누비는 것으로 유명해 ‘뚜벅이’란 별명을 가진 인물. 그는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사람’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진=은평구청]
김미경 서울시 은평구청장. [사진=은평구청]

Q. 은평구의 변화 발전에 ‘문화’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셨더군요.

은평구는 1979년에 서대문에서 분구를 했어요. 돌봐야 할 시설(복지)들이 은평구가 있는 외곽 쪽으로 쏠리게 되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려운 구조였죠. 그런데 인구는 많았어요. 그러니 전임 구청장님들 입장에서 개발과 교통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을 거예요. 제가 구청장이 된 후에도 고민이 계속된 거죠. 은평구는 재정 자립도가 낮은데, 미래 먹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돌아보니, 은평구는 자연환경이 굉장히 좋았어요. 산이 여섯 개, 천도 작은 지천까지 여섯 곳에 둘러싸였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 사람들이 굉장히 좋습니다. (웃음)

Q. 은평구의 가치에 ‘사람’이 들어가는 거군요. 

실제로 그래요. 주민들 27%가 자원봉사자로 등록돼 있어요. 적십자회비납부율은 은평구가 17년 동안 1위입니다. 자연환경도 좋고, 사람도 좋은 거죠. 그리고 은평에 문화 콘텐츠가 꽤 있더군요. 자연, 사람, 문화. 이걸 어울리게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문화로 경제 선순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죠. 구청장 취임 전에 서울시 도시계획관리위원회와 문화관광위원회에서 보냈습니다. 그때 서울의 문화를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는데, 은평에도 문화를 입힐 수 있겠더군요. 그래서 올해 많은 것들이 시작돼요. 국내 유일의 국립 한국문학관이 5월 착공되고요. 올해 개통하는 GTX-A 연신내역세권 개발도 진행되고 있죠.
 

[사진=은평구청]
김미경 은평구청장. [사진=은평구청]

Q. 국립한국문학관은 2016년부터 전국에서 유치 경쟁이 뜨거웠습니다. 어떻게 은평구에 자리잡게 된 건가요? 

모든 지자체가 노력했겠지만, 은평구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주셨어요. 숙원 사업이었죠. 특히 전임구청장님이 국문과 출신으로 한국문학관 유치에 각별한 애정이 있으셨어요. 저도 그때 서울시의원으로 힘쓰고 있었고요. 그때는 안 됐지만, 민선 7기 취임하고 6개월 만에 유치가 됐죠. 그 과정에서 구민들과 서명운동을 했습니다. 28만 명이 서명했더군요, 저희 구민이 48만 명인데요, 그러니 아이들 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다 서명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웃음) 은평구 문인협회에서도 많은 노력을 해주셨어요. 은평이 본래 문인들이 많고, 기자촌이 있어 이름난 기자들도 많았죠. 은평이 북한산 근처라 예전부터 문인들이 글을 쓰러 많이 왔다고 합니다. 자연환경도 한 몫한 거죠.

다만, 교통이 아쉬워요. 개관하면 사람들이 150만~200만 명이 몰린다고 예상하니, 반드시 신분당선이 연장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도 많이 올 테고, 또 북한산 자락에 버스가 많이 다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지자체로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문학관 유치만이 아니라, 기자촌 터 인근을 모두 문화예술 메카로 만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이곳을 아파트나 다른 시설 개발로도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문화예술 산업에 힘쓰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파트 개발로 우리가 돈을 벌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모일 수는 없습니다. 주민들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 개발만으로는 삶의 질이 올라간다고 할 수 없어요. 편리성은 좋아져도 실상 삶의 질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문화도 있고, 문학도 있고, 자연도 있고.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이 조화를 이뤄야 삶이 나아지죠. 경제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아파트만 세워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죠.

사람들이 머무르면서 은평구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은평에는 작은 전통 시장들도 많거든요, 이런 곳도 방문하면 참 좋겠습니다. 그 외에도 불광천의 벚꽃, 우리나라 유일의 한옥전문박물관. 그리고 본래 은평에 뿌리내린 천년 고찰 진관사와 삼천사가 있죠. 진관사는 해외 귀빈들도 방문하는 곳입니다. 한국문화는 불교와 같이 가죠. 문화적인 입장에서 이런 곳을 방문해보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도 세워질 겁니다.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은평한옥마을. [사진=은평구청]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은평한옥마을. [사진=은평구청]

Q. 구청장님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은평구에 살아온 구민이기도 하시죠. 그 시절 은평구는 지금보다 낙후된 도시라는 인상이 있었고요. 어린 시절, 문화시설에 대한 결핍이 이러한 문화산업을 활성화하려는 데 영향을 줬을까요?

음, 제가 수색초를 나왔습니다. 은평구에 쭉 살면서 이곳이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말했듯이 은평구 자체가 자연환경도, 사람도 참 좋은데 아쉬웠어요. 은평구민들이 그리고 끈끈합니다. 본인들이 이사를 가도 적응을 못하고 다시 돌아오시는 분도 많아요. 17년째 은평구에서 일하면서 더 크게 느껴요. 이런 따듯한 구민들이 좀 더 잘 살도록 경제적인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 싶었던 겁니다. 문화부터 교통 인프라까지. 그래서 앞으로 보여줄 게 많아요.

Q. 문화예술 사업에 대한 애정이 읽히지만, 현재 많은 지자체들이 문화예산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실제로 은평구도 작은도서관 예산을 삭감했더군요. 관련해 정부의 지원금이라든지 어려운 부분이 있을까요?

정부 지원금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죠.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문화예술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필수적인 부분이고, 실생활과 사실 정말 가까워요. 삶의 환경과 질이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자체는 당연히 문화예술을 지원해야만 합니다. 이전부터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문화예술 지원금을) 미루는 구조입니다. 문화나 문학적인 부분의 운영비의 경우요. 국립한국문학관은 국책 기관과 연결된 것이고요. 예산은 한정 돼 있는데 사업 매칭비가 계속 (지자체와 정부 사이에서) 밀리는 거죠. 

말씀드렸듯이, 또 은평구는 서대문구와 분구될 때 돌봐야 할 시설이 500곳이 넘었어요. 돌보려면 매칭비가 어마어마합니다. 은평구는 장애인 인구도 3~4위, 노년층 인구도 4위~5위를 오갑니다. 저희 은평구 예산 중 67%가 복지비로, 필수적으로 나가야 하는 비용입니다. 그 나머지를 잘 써야 하는데 문화 부분까지 잘 쓰려면, 예산이 정말 부족한 겁니다. 그럼에도 해결방법을 찾아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진=은평구청]
김미경 은평구청장. [사진=은평구청]

Q. 도서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작은도서관 예산 삭감은 아쉽지만, 은평구는 본래 도서관사업이 잘 운영돼왔죠. 2년 연속 전국 도서관 운영평가 대통령상(2020년, 2021년)을 받았더군요.

은평구가 구립도서관이 8개입니다. 서울시 스물다섯 개 구 중에 구립도서관이 대부분 2~4개 내외예요. 많다고 할 수 있는 거죠. 무엇보다 주민들이 도서관에 대해서 애정이 많습니다. 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을 예로 들 수 있어요. 흥미로운 공간인데, 주민들이 먼저 ‘도서관 지어주세요’하고 만든 곳이고, 협동조합 형태로 지금도 주민들이 운영에 참여합니다. 여덟 채 주택을 묶어서 도서관으로 만들어, 내부에 골목이 그대로 들어와있어요. 이 외에도 윤동주의 정신을 이어받은 내를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4차 산업 체험 공간을 마련한 불광도서관 등도 굉장히 재미있는 공간입니다.

Q.  많은 영화제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를 유치한 것도 인상적이였어요.
10회까지 구로구에서 했는데, 지난 해 11회를 은평구에서 한 거예요. 108개국 나라에서 3,000편이 넘는 영화가 들어왔고 구민들에게도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은평에 청년 영화인들이 꽤 많은데, 그래서 청년 영화제(서울은평청년영화제)도 시작했고요. 저희 은평 구민들이 참여 예산이나 활동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문화적인 콘텐츠에도 관심이 많고요. 그래서 이뤄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은평구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문화예술 그리고 도서관과 같은 인문학 인프라 확대도 근거가 되는 것 같아요. 문화와 인문학이 아이를 키우는 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문화와 인문학은 삶과 밀접해요, 그리고 목적을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은평에서는 지금 아이 키우기부터 노년까지, 평생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도서관 사업도 늘려가는 거고요. 또, 은평구는 예식장도 없지만, 대학도 많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구민들을 위해 ‘대학’을 만들었습니다.

Q. ‘1동 1대학 사업’을 말씀하시는 거죠? 은평구 16개 동을 대학과 연계하는 사업이요.

맞아요. 구민들이 본인의 관심사나 지역 특색에 맞춰 제안하고 대학과 연계했어요. 이를테면, 역촌동은 인구도 많지만 5층 이하의 저층 주거지가 많습니다. 어려운 분들도 많죠. 그래서 사회복지대학원과 연계해 본인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교수들이 와서 강의를 엽니다. 주민들이 그럽니다. ‘이야, 내가 대학 다니지는 못했지만 이제 이대 교수님 강의를 다 듣네’라고요. 자부심이 생기는 거죠. 대학 입장에서는 지자체와 연결해 자기 연구를 하고 이론적인 토대를 실현할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좋은 부분들은 은평구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사진=은평구청]
김미경 은평구청장. [사진=은평구청]

Q. 구청장님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03년부터 계속 정책과 연관된 공부를 해오셨고, 사회복지사, 요양복지사 자격증도 직접 취득하셨다고요. 이렇게 직접 공부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건, 제가 몰라서 그렇습니다. 구청장이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이론적으로 토대가 있으면 실천하기 좋죠. 구청장 입장에서 지금 있는 것만 활용해서는 안되는 것 같아요. 구민만이 아니라 직원들과 대화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해야하는 거죠. 그래서 공부하는 거예요. 해외나 다른 곳에 나가서 배우기도 하고요. 우리 직원들도 되도록이면 나가서 공부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래서 직원들을 몇 명 뽑아 1년 동안 해외에 보내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배낭여행을 하든, 벤치마킹을 하러 지방에 가든 기획서를 제출해서요. 저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직원들도 그럴 수 있었으면 합니다.

Q. 엄마를 위한 ‘아이맘 택시’를 비롯해 노년층을 위한 ‘백세콜’까지. 정책들이 디테일하고, 사회적 약자를 향해 있어요. 구민들의 실제 삶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별명이 ‘라면 구청장’이에요. ‘내가 저 사람이 라면’ 어떨까? 돌아보는 거죠. 아이맘 택시는 코로나19 때 임산부나 엄마들이 버스를 타기 어려운 걸 보고 만들었어요. 아예 택시를 불러주자고 했죠. 이제는 다른 지자체가 벤치마킹하고 있어요. ‘백세콜’도 노년층을 위해 택시를 불러주는 사업이었는데, 그분들이 어딜 가시나 보니 대부분 병원을 가시더군요. 병원에 가면 또 키오스크가 있는데 그걸 다루기 어려워하는 걸 보고, 함께 동행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고요. 사실, 노년층이 자녀가 있어도 그분들은 일하느라 시간을 내기 참 어려운 게 현실이죠. 이런 부분을 반영한 거죠.

Q. 현장에서 디테일이 나오는 거군요. 구민들과는 어떻게 소통하고 계십니까?

제 전화번호가 오픈돼 있습니다. (웃음) 그러니 연락이 많이 오죠. 구민들은 사실, 구청장이 하는 일이 뭔지 시의원이나 구의원이 하는 일이 뭔지 잘 모르시죠. 그런데 제가 구의원 두 번, 구청장 두 번 하니 이제 제일 편한 사람이 구청장인 거예요, 하하.

구청장한테 먼저 문자로 알려주니 제가 (현장 얘기를) 직원보다 먼저 압니다. 이제는 직원들이 저보다 먼저 알아서 하려고 하더군요. 직원들이 예산 공모 사업도 정말 잘 따옵니다. 올해 한 300억 정도를 공모 사업으로 따왔어요. 은평구민과 직원들은 혼연일체 같아요.

Q. ‘사람’들이 모여서 배우고 공부하는 도시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4년 출간된 책에 ‘정치를 하겠다 마음먹으면서 눈에 보이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늘을 비추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지금 딱 10년이 지났더라고요. 잘해온 것 같으신지,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신지요.

하하.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고 말해야 할까요? 정치 활동을 언제 내려놓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주민들한테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요. ‘김미경, 그래도 구청장 할 때 잘했어’ 이렇게요. 전 은퇴해도 이 지역에 살 사람이기 때문에. 정말 더 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은평구가 제 삶의 현장이니까요.

Q. <독서신문> 독자를 위해 책 한 권을 소개한다면요?
『프랑스인의 방에는 쓰레기통이 없다!』라는 책입니다. 저희 직원들끼리 정책을 위해 독서모임을 가졌는데, 그때 읽은 책들 중 하나입니다. 굉장히 얇고 단순하게 쓴 책이에요.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환경 인식을 잘 알 수 있어요. 은평구민들도 환경에 관심이 많은데, 다 같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