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명명하에 바닷빛과 하늘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테두리와 낮은 채도의 소라색 바탕이 겹쳐진 시인의 이번 시집은 마치 파블로 피카소가 절친한 친구의 자살 이후 짙은 푸른색만을 고집했던 청색시대를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시집은 사랑의 쓸쓸함만을 내세우는 건 아니다. 시인은 푸르른 외로움을 딛고 더 밝고 환한 사랑의 세계를 보여주며 시대적 감수성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언제 다시 사랑이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놓고 한 번도 닫지 않았”다는 시인은 오늘도 “당신이 사는 세상 모든 틈에/열쇠를 하나씩 맞춰”본다. 사랑에 인색한 시대에서 사랑의 대역을 자처하는 시인 이병률, 그의 날개에 기대어 섬세한 시적 언어들을 되새기다 보면 우리에게도 다시 사랑할 힘을 주어질 것이다.
■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 172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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