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 만큼 벌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자라난다. 중요한 것은 상벌의 방식이다.
(…)
어른들은 아이를 보호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안정된 규범의 세계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성장해서 당당한 ‘나’가 되고 ‘우리’에 속할 수 있다. ‘울타리 치기’는 그 출발점이다. <30~31쪽>
발달장애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마음은 초조하다. 그래서 한 번에 두 계단씩 올라야 다른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며 등을 떠민다. 스스로 걸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대신 시간이 없다며 어른들이 대신 안고 오르기도 하고, 올라야 할 계단을 건너뛰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좋았던 적은 없다. 오히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키우고 어른들은 쉽게 지친다. 그 길의 끝에서 만나는 것은 ‘우린 틀렸어’, ‘나는 안 돼’ 같은 좌절뿐이다.
발달장애 아이들에게는 성취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성취를 경험하는 일은 드물다. 판단 기준이 ‘평균’ 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계단의 높이다. 계단이 높으면 스스로 오를 수 없고, 남이 오르게 해주면 성취의 기쁨이 없다. 한편 기대치가 높으면 아이의 성취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칭찬해주지 않는다.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하려면 계단의 높이를, 기준을 다시 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어른들의 결심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은 틀리는 법이 없다. <69~70쪽>
대화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성립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 말하고 싶지만 대화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의 부재(不在).
아이들은 어른들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늘 바쁘다. 어렵게 기회가 마련됐다고 해도 대화는 일방적으로 흐른다. 어른의 눈에 미숙한 것투성이인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참지 못하고 그만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아이들은 입을 닫는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줄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84~85쪽>
많은 경우 아이의 ‘재능’은 어른의 잣대로 선정된다. 학습 외의 특별한 능력, 이를테면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살피는 능력 같은 건 쉽게 간과된다. 주로 영어나 수학, 음악이나 미술 등 눈에 보이는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아이들은 어른들의 태도에 따라 자기들이 정말 좋아하는 걸 바꾼다. 아이들에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른의 눈으로 아이의 재능을 판단하면 오해가 생긴다. 부모는 아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부모가 시키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해온 경우, 그 때문에 아이가 정서적으로 피폐해진 후에야 아이의 본심을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59쪽>
어른들은 정서적으로 아이들에게 의지한다. 어리고 미숙한 아이들은 그 자체로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된다. “엄마 아빠 때문에 살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들보다 “너 때문에 산다”고 말하는 부모가 훨씬 많은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아이들은 고마워할 줄 알고 기뻐할 줄 안다. 어른들은 기꺼이 아이들에게 헌신하며 희망을 키운다. 아이들 덕분에 좋은 어른이 될 기회가 생긴다. <218~219쪽>
[정리=이세인 기자]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
김지호 지음|은행나무 펴냄|224쪽|1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