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한국이 죽어가는 원인, 그것도 외적인 요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들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게 된 원인은 (...) 한국인들이 돈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기초적인 논의는 바로 이 사실에서 출발한다. (...)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지출할 자원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29쪽>
한국 공동체를 설명할 때 흔히 사용되는 ‘사람을 갈아넣는다’라는 말은 ‘돈을 쓰지 않는다’라는 말의 뒷면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 단위이고, 이 물리적 단위가 계속해서 ‘갈려 나가는’ 상황이 오래도록 유지된다면 그 공동체의 재생산성은 붕괴될 것이다. 돈이 쓰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만큼 사람이 더 쓰인다는 것은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더 쓰이는 사람에게 자원이 적절하게 배분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그럼 그 사람은 자원을 배분받지 못하면서 자신의 시간마저 잃게 되는 것이라고 봐야한다. 시간을 잃는다는 건 소비, 출산, 유가, 교육 등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활동에서 배제를 당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30쪽>
한국은 비교 가능한 대상 국가군 중 구매력에 비해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라고 봐도 좋다. 다시 말해서 한국인들은 늘 버는 것에 비해서 많은 돈을 써야만 한다. <36쪽>
현재는 투표로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만 지방에 배분한 상태이며, 적절한 ‘경제적 기반’까지 배분하는 문제는 이 사회가 도외시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94쪽>
사람들은 최근의 한국이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말은 반만 맞다. 한국은 원래부터 국가가 돌보는 부분이 거의 없었던, 사전적 정의 그대로의 각자도생 사회였다. 더 정확히는 농촌 공동체가 붕괴되고 난 이후 한국에선 늘 정보의 취합과 취사선택에서 우위를 보유한 개인이 더 강한 생존력을 가져왔다. (...) 한국이라는 체제는 늘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 집중해 왔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에서 다양하고 표준화된 재화를 제공하여 개인의 선택을 줄이기보다는, 개인이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개인이 책임지는 형태의 체제를 변함없이 유지했다는 뜻이다. <177쪽>
한국 사회는 왜 시험이 공정하다는 허상에 집착하는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이는 우리가 시험의 결과가 ‘수치’로 공개되는 투명성을 공정성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 결과와 누군가의 위치를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해서 그 제도 자체가 공정하게 될 수는 없다. 시험이야말로 가장 공정한 제도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기계적 투명함을 사회적 공정함으로 바꿔치기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240-241쪽>
한국 안에서야 모두가 비슷한 환경이기 때문에 한국 공동체의 노동환경이 자녀 양육에 좋은지 나쁜지도 구별하기 힘든 채로 모두가 꾸역꾸역 아이를 키우겠지만, 국제비교를 하면 한국의 양육환경은 최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양육에 가장 중요한 부모의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비교 가능한 국가들 중 가장 나쁜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269쪽>
한국 사회에서 이민을 둘러싼 심리적 장벽은 서구권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으며, (...) 보수진영은 벌써부터 이민자들이 한국의 선진적인 시스템에 탑승하여 건강보험 등의 사회보험에서 무임승차자 역할을 한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수지를 봐도 한국 공동체 거주 외국인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게 명백한 사실이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외국인 건보 재정수지는 2조 2742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316쪽>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좁은 길을 향해 가는 과정이 다소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우리에겐 미래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 <317쪽>
[정리=유청희 기자]
『자살하는 대한민국』
김현성 지음 | 사이드웨이 펴냄 | 344쪽 | 1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