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로 열어젖힌 멋진 여자들의 세계
바퀴로 열어젖힌 멋진 여자들의 세계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5.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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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장애여성이 몸을 던져 수많은 세계에 가닿고 그곳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전해 서로의 우주를 넓히면 좋겠다. 나는 그러기 위해 나이를 먹고, 계속해서 언니들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적는다.

책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는 10대부터 60대까지, 소녀에서 할머니에 이르는 장애여성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재를 비추는 기록인 동시에, 세상이 롤 모델을 보여주지 않아 스스로 찾아 나선 20대 저자의 성장 서사다. 그렇다고 책은 ‘장애’를 확대해서 보여주거나, 성장과 극복과 같은 단어와 연결해서 인물들을 조명하지 않는다. 그저 다양한 인생 경로에서 장애여성들이 저마다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 분투한 고단하고 즐거운 순간들의 기록에 불과하다.

산부인과 검진 의자에 어떻게 올라갈 수 있는지,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살아갈 용기를 어떤 계기로 획득했는지, 즐겁고 안전한 성적 경험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기합을 주고받으며 운동하는 재미가 얼마나 큰지… 마이크 앞에 앉은 여자들은 장애여성이기에 요긴한 꿀팁과 지혜를,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느낄 법한 고민과 기쁨을 나누며 연결의 순간을 빚어낸다.

언니들 있는 거 정말 중요해요. 저도 정말 모르는 것들이 많았고, 표본이 되려고 일부러 더 애쓰느라 지쳤던 날들이 있거든요. 다행히 먼저 기숙사에 사는 사람들을 봤고, 자취하는 사람들을 봤고, 그런 게 도움이 됐어요. 표본이 되는 언니들이나 오빠들이나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일들이에요. 그게 아닌 제 취미 생활이라든지, 아니면 다른 일들은 ‘내가 바꿔 놔야 다음에 하는 사람들이 좀 편하겠구나.’ 이런 생각 때문에 제 에너지 이상으로 활동했거든요.
언니가 정말 필요해요. 근데 그게 꼭 개인적으로 깊은 관계가 아니어도 내가 궁금한 게 있을 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정보가 있어도, 아니면 ‘이런 사례가 있었다.’ 하는 아주 조그마한 정보만 있었어도 저는 더 잘했을 것 같아요. 더 잘 살았을 것 같아요.

아픈, 땀 흘리는, 월경하는, 나이 드는 몸은 한계를 마주한다. 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반 시설과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사회에서 지치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다시 집 밖으로 바퀴를 굴릴 수 있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있고, 거기에 네가 있음을 아는’ 감각은 중요하다. 그 자각이 새로운 시도를 위한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한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의 길은 넓고 다양해진다.

하지만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서로 친밀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정체성이 그러하듯이. 책 속에 등장하는 6명의 인터뷰 참여자들은 휠체어를 타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을 나누며 맞장구치다가도, 서로 다른 세대와 나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며 삶의 확장 가능성을 살핀다. 오랜 시간 마주해 온 관계가 빚어내는 유대도, 잘 모르는 사이였지만 장애라는 교집합을 공유하며 성큼 가까워지는 순간도 물론 존재한다. 다른 존재를 보며 나의 궤도를 가늠하는 마음은 곧 ‘너를 통해 나를 보는’ 사랑이자 우정이다.

이들의 대화에는 자기 삶을 소중히 일궈 나가는 사람의 긍지가 반짝인다. 휠체어 타는 사람을 출퇴근길 대중교통의 시민으로, 옆자리에서 일하는 팀원으로, 헬스장에서 땀 흘리는 회원으로 마주하는 일이 드문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에 대한 존경과 응원의 마음이 흐른다.

우리를 관통하는 특성인 ‘장애’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이해되는지 말하고 싶었다. 그 새로운 이해 속에서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는 경험을,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선물하길 바란다.

이렇듯 저자 6명의 이야기는 또 다른 우리가 ‘내 모습 그대로’ 삶의 범위를 넓혀 나갈 수 있는 영감이 된다. 그리고 세대를 넘는 언니들의 혜안은 연결된 존재로 살아감을 자각하는 모두가 지표로 삼을 만한 공명을 전한다. 때문에 저자는 우리가 더 많이, 더 자주 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바퀴가 더 멀리, 넓은 곳을 구를 수 있기를. 우리가 말들의 이어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기를.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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