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
팔린 소들이
팔리지 않은 소들을 바라본다.
우시장 어귀의 쇠똥냄새 위에
가을은 저물고
힘없는 짚검불이
바람에 불려다니는 근처의
발목들의 당당함을
곁눈질을 본다.
소가지 없는 소가 어느 놈인가.
이제 풀비린내도 시들고
열 마지기의 논도 작별하다.
큰 눈에 콩밭두렁의 이슬이 떨어진다.
팔리지 않은 소들이
팔린 소들이 바라본다
빈 발목이 쓸쓸해지기 시작하고
고삐에 부딪는 햇살 한 줌을
나누어 새김질하며
팔린 소들과
팔리지 않은 소들이
저무는 가을 속으로 저마다 돌아가고 있다.
-이덕영, 「우시장에서」
팔리지 않은 삶을 위하여
할아버지는 소 장수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소 몇 마리 대신 부치는 일이었습니다. 소죽 끓이는 겨울 새벽이 아직도 문틈으로 보입니다. 무명천이 풀려나오듯 뽀얀 연기가 피어나고 콩 볏짚 푹 삶은 냄새가 구수합니다. 질겅질겅 아삭아삭 바득바득 여물 씹는 소리가 여전히 귓전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시장에 갔다 돌아오는 할아버지 등판으로 다 가시지 않은 소 콧잔등 훈기와 쨍한 아침 햇살이 왠지 쓸쓸했습니다. 이런 풍경은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덕영 시인이 쓴 시 한 편이 잠시 마음을 쓸고 갑니다. 그는 충청도 시인입니다. 마흔 남짓 살다 간 외진 시인입니다.
시 「우시장에서」는 서둘러 우리를 저무는 가을로 데려갑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지 않아 애를 태우고 핏발 서린 눈으로 서로를 강타하던 밤이 지났습니다. 다 파한 우시장 한 켠에 등 갈기 까칠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소의 눈망울이 멀뚱합니다. ‘팔린 소’와 ‘팔리지 않은 소’의 차이는 무얼까요. 시인은 그렇다 한들 모두 저 가을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체념한 듯합니다. 바람에 불려 다닌다 해도 무슨 소용이냐고, 힘없는 빈 발목이 쓸쓸하다고 노래합니다. 얼마 있지 않아 우리는 ‘풀 비린내’ 나는 청춘과 헤어져 땀 흘렸던 ‘논밭’과 작별해야 합니다. 그러니 누구의 선택이 나와 무슨 상관있을까요. 모두 저당 잡힌 삶이 아닌가요.
다시 시를 읽어 봅니다. 팔린 소와 팔리지 않는 소 모두 고단하게 ‘새김질’한 시간 앞에 머리 숙입니다.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그 누군가의 선택은 ‘죽음’과도 같습니다. 단지 선후의 자리 바뀜밖에 없습니다. 결국 다시 소환해 가려 하는데 무엇으로 당해낼 수 있을까요. 시인은 거듭 묻습니다. “소가지 없는 소가 어느 놈인가.” 속없는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침묵하며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지요. 백여 리를 걸어 소 두 마리를 끌고 갔던 새벽이 지나고 다음 날 새벽에 팔리지 않은 소를 데리고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