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떠밀려 나온 여자’의 취업이란 이름의 인생 도전기
[책 속 명문장] ‘떠밀려 나온 여자’의 취업이란 이름의 인생 도전기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4.04.02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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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남편이 핸드폰을 끼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데, 아이들에게 바른 생활이 어쩌고저쩌고 가르치다 보면 눈물이 났다. 아이들 역시 게임을 반대할수록 더욱 앙칼지게 대들었고, 이렇게 밀리면 앞으로 사는 내내 끌려다닐 것 같아서 강경하게 맞서도 보았다. 늘 격한 감정싸움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한탄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엄마로서 허탈하고, 인간적으로 비참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소리를 질러도 속이 시원치 않고, 눈물을 흘려도 개운치 않고, 집을 나와도 갈 곳이 없었다. 오래전에 시작된 마음의 병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쪽 청력을 상실하고, 그 외 신경통과 불안장애를 앓을 정도로 몸과 마음도 병을 얻게 되었다. 이 와중에 남편의 퇴직이란 변화가 생긴 것이고. 돌아보면 참 한심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그 속에도 크고 작은 기쁨과 즐거움은 있어서 그저 쭉 찢어 버릴 수만은 없는 기억도 많다는 것이 인생의 딜레마일까?”

“내 수준에 이 정도는 되어야 적합하다(?)는 회사들을 향해 날려 보낸 이력서들이 면접 기회를 물고 오지 않으니 마지막엔 설거지 공장을 비롯해 부품 검수, 액세서리 포장, 김치 공장, 청소 업체는 물론 미나리 수확 농장까지 고려하게 됐는데 그 많은 곳 중 유일하게 설거지 공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설거지 공장이라고 해서 식기를 물에 담그고 박박 문질러 닦는 줄 알았는데 원래 그런 건지 세상이 좋아진 건지 반자동화 시스템이라 사람이 하는 일은 생각보다 적었다. 휴게소, 관공서, 지역센터, 각 기업체, 공사장 등 경기도 곳곳에서 식사하고 난 잔해가 음식물 쓰레기만 빼고 실려 온다. 식판은 물론이고, 수저며 컵이며 반찬통 등등이 이삿짐 박스 사이즈만한 통에 담겨 거대한 탑차에 실려 오면 남자 직원들이 하나씩 내린다.”

“벽이란 것도 달려가다 만나야 한다. 달려가는 와중에 벽을 만나면 어떻게 넘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궁리라는 걸 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고 집에서 벽을 마주하게 되면 그것은 넘어야 할 관문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구조물이 된다. 공간을 구분하는 물리적인 벽만 벽이 아니다. 내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계점이 벽이 되고, 그 벽이 존재하는 상태를 당연하게 수용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남편이 생각하는 여자보다 더 못난 여자가 되었다. 나 스스로 더 깎아내서, 저 이가 모욕감을 주더라도 개의치 않아지도록”

“살아 본들 나아지기는커녕 후퇴하는 것 같을 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기억도 안날만큼 날려 보낸 이력서와
분명히 기억나는 몇 안 되는 면접 기회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취업 기회.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그동안 나를 옭아맨 것이 남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만, 나를 이렇게 둔 건 바로 나였다.”

[정리=한주희 기자]

『면접 보러 가서 만난 여자』 (전자책)
서인주 지음 | 담담글방 펴냄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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