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 있는 물은 지척의 불을 끄지 못한다
먼 곳에 있는 물은 지척의 불을 끄지 못한다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4.03.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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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무거운 철문 두께만큼이나 높은 벽이 생긴 이웃들이다. 현대에선 좀체 무너지지 않는 이 벽은 사람 마음조차 철저히 차단한 상태다. 이 벽은 이웃의 안녕 따윈 무관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간간이 아파트촌에서 들려오는 독거사 뉴스가 이를 방증하잖은가. 회색빛 콘크리트 숲에 갇혀 사노라니 더욱 이런 현상을 실감한다. 하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엔 이웃의 따순 정이 넘친다. 사람은 사소한 것에 정들고 벗어진다는 사실을 이곳에 살며 새삼 깨닫곤 한다.

여름철만 돌아오면 현관 앞엔 수시로 상추며, 파, 아욱 등이 비닐봉지에 가득 담겨 놓인다. 버섯 농장을 하는 이웃은 갓 따온 싱싱한 버섯들을 종종 문 앞에 놓아둔다. 식당을 운영하는 어느 이웃은 구수한 누룽지를 한 보따리씩 놓고 가기도 한다. 이웃의 이런 살가운 정을 대하노라면 절로 가슴이 훈훈하다. 그래 나 역시 이웃의 오는 정에 가는 정을 듬뿍 얹어 보태곤 한다.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30년 된 된장을 퍼 주기 예사다.

이웃이란 뜻의 본디 한자를 살펴보면 이웃 ‘린(隣)’ 자는 ‘읍(⻏) 변’에 ‘도깨비불 린(燐)’자를 덧붙인 글자 아니던가. 도깨비불 린(燐)자는 ‘쌀 미(米)’ 아래에 어기질 ‘천(舛)’자를 받친 글자다. 이 글자의 본래 뜻을 살펴보면 이렇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쌀을 주고받으며 왕래하는 사이를 뜻하는 글자다. 지난날 궁핍한 삶이었지만 한 줌의 쌀일지언정 서로 나눠먹는 사이, 내 것 아까운 줄 모르고 덥석 타인과 나누는 게 예전 우리 모습이었다.

이러한 이웃 온기가 점차 식어간 것은 산업사회 후기부터다. 특히 요즘 아파트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우리네 생활상이다. 이 때문에 곧잘 이웃과의 분쟁도 발생하곤 한다. 아파트 층간 소음이 그것이다. 걸핏하면 이 문제로 칼부림까지 일으키잖은가. 예전엔 상상조차 못할 현상이다.

하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아닌가. 그러므로 가장 편안한 쉼터는 역시 가정이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휴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집 아니던가. 이때 아래,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크나큰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하노라니 수년 전 코로나 19가 창궐했을 때 일이 갑자기 떠오른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이웃과 마주치면 경계하기 일쑤였다. 혹여 전염력 강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될까 봐 온몸을 움츠리기 예사였다. 심지어 어떤 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일회용 고무장갑을 끼고 아파트 층수 버튼을 누르는 것도 목격했다. 반면 이때만큼 이웃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적도 없었지 싶다. 바로 옆집이라든가, 아니면 같은 아파트 통로에 사는 이웃이 제발 코로나19에 전염되지 않기를 얼마나 마음속으로 간구했던가. 평소 그때만큼 이웃의 평안을 진심으로 빌어본 적 있던가.

이유야 어찌 됐든 이웃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나 자신도 안전하다. 이웃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가는 『한비자』에 나오는 얘기만 하여도 그렇잖은가. 전국 시대 노나라는 항상 제 나라의 위협을 받자 멀리 떨어져 있는 진나라와 우호를 맺었다. 그리곤 제 나라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기 위해 두 나라에 사신을 보내려 하자 ‘이서’라는 자가 극구 말렸다. “불이 났을 때 먼 나라 바닷물이나 강물을 가져온다 해도 이미 건물은 모두 전소돼 그 물이 필요 없다.” 라고 말이다.

즉 이 말은 ‘먼 데 사는 사촌보다 이웃이 낫다’라는 우리 옛말과 일맥상통하잖은가. 아무리 우애 깊은 형제일지라도 천리만리 떨어져 살면 날마다 마주치다시피 하는 이웃만 하랴.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너와 내가 있기에 우리가 존재하잖은가. 이는 단연코 꼭 이웃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지체가 높고 재산이 많아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그래서 생겨났다.

그러므로 이웃을 언제나 같은 깊이로 사랑하는 일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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