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영어도서관에서 30분 째 책을 읽고 있다. 독서 지도 선생님은 학생의 집중력을 더욱더 높이기 위해 청독(도서음원을 들으며 책을 읽는 방법)’을 시도한다. 이제 일명 ‘북토크’ 시간이 돌아왔다. 읽은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시간인데, 그제야 학생은 “읽긴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한다. 이미 80분 수업시간 중 1시간이 지나는 시점이다.
최근 교실에서 글의 지문이나 책을 읽고 난후 학생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는 풍경이다. 연령을 막론하고, 현대인에게 ‘글을 읽는 것’은 이미 어렵고 귀찮은 행위가 되었다. 이렇다보니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며, 그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비판적 독서는 이제 기대조차하기 어렵게 되었다. 실제로, 3년마다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적 리터러시 성취수준을 평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학생들의 읽기능력 점수는 2006년 OECD국가 중 1위인 556점에서 2022년에는 525점으로 하락하였고 해가 거듭할수록 더욱더 빠르게 가속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읽기능력이 이렇게 빠르게 저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깊이 생각하는 능력인 사고력의 부족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학생들은 왜 사고력이 부족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그 원인을 한국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아동 발달을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자 웰맨(Wellman)은 “독서는 논리적 사고 과정에 기반한다”라고 말했다. 독서는, 어떤 장르의 글이든 그 글을 쓴 작가의 목적에 맞게 쓰인 자료를 읽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글을 읽고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그 글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의 차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만약에 선생님이 중심인 교실에서 늘 정답이 정해져 있는 주입식 수업방식의 교육을 받았다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해지고 이는 결국 문해력 저하를 불러오게 된다.
이러한 문해력 저하는 ‘산 혹은 바다, 더 좋은 한 가지를 고르고, 그 이유를 말하세요’와 같은 단순한 질문에도, 자신의 의지로 하나를 선택하여 설득하는 것조차 어렵게 한다. 나아가 토론 수업을 진행할 때, 요즘 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 학습한 후에, 그에 관한 찬성, 반대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당연히 더욱더 어려워진다. 이렇다보니,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토론수업은 정답이 없는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교실은 더욱더 조용해진다. 분명히, 참여도가 높아야하는 수업임에도 이토록 조용하니, 토론하기 위한 정보습득 단계인 읽기 시간에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둘째는, 학생들의 조급한 학습 태도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전자기기를 통하여 쉽고 빠르게 많은 양의 정보를 보고 듣게 된 학생들은 두께가 있는 책을 읽거나, 호흡이 긴 글을 읽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이제는 영상 자체도 상영시간이 긴 프로그램을 짧게 줄여놓은 “쇼츠” 영상을 빠르게 재생해 본다. 그 결과 학생들은 전반적인 내용을 대략적으로 알 수는 있지만 세부사항을 이해하지는 못하게 된다. 독서 수업을 할 때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제법 두께가 있는 책을 말도 안 되게 빠른 시간 안에 다 읽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앉아있었음에도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학생도 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의 독서 모습은 이처럼 다르지만, 공통점은 모두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독서코칭학원이나 논술학원, 영어도서관에서는 ‘청독’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청독에 익숙해진 친구들은 ‘목독(자신이 직접 책을 눈으로 읽는 방법)’으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다.
셋째로, 어휘력 부족이다. 이는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책 읽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요즘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영어원서리딩지수인 SR(리딩레벨진단 프로그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빠르면 5세부터 영어를 학습하여 초등학교 1~2학년인 저학년 시기에, SR4 (미국 공립학교 4학년에 해당하는 영어수준)이상이 되면, 학원에서 도서레벨지수가 4점대 이상인 소설들을 읽게 되는데, 이러한 소설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어로도 모르는 영어단어들이 한 페이지에도 무수히 많다. 이렇다보니, 당연히 독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문해력’이라는 능력은 학생들의 전반적인 과목의 학습이해도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과의 의사소통, 자료 조사, 서류처리, PPT 작성 및 발표 등 모든 업무에는 문해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 뿐인가? 일상생활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들, 수시로 노출되는 광고들, 각 종 기기의 설명서들을 보고 읽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일상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결국 문해력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디지털 시대가 고도화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문해력 지수는 더욱더 필요하게 되었다. 스웨덴, 프랑스와 같은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문해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문해력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우리도 하루 빨리 이 문제점을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실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