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문자, 시대의 문명과 문화를 만들다
[발행인 칼럼] 문자, 시대의 문명과 문화를 만들다
  • 방재홍 발행인
  • 승인 2024.04.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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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홍 발행인

인류의 모든 문명과 문화는 문자 위에 세워졌다. 문자는 불, 바퀴와 더불어 인류의 3대 발명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불이 인류를 야만에서 문명으로, 바퀴가 수송의 혁신을 불러왔다면, 문자는 인류의 지식과 정보를 보전하고 전달하며 비로소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의 대전환을 불러왔다. 인류 역사의 수많은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문자는 낡은 시대를 저물게 하고, 새로운 시대를 불러오는 위대한 힘을 보여 주었다.

최초의 문자가 만들어진 이유는 실생활에서의 필요 때문이었다. 기원전 3500년경부터 수메르인들이 최초로 사용했던 쐐기문자의 점토판 대부분은 일상의 매매 장부나 영수증이었다. 사회생활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약속 들을, 말하면 바로 사라지는 음성언어에 모두 맡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문자는 단순하게 약속을 기록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추상적인 약속을 기록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통 방식의 혁명을 이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제도를 끊임없이 개혁해 나갔다.

가장 눈부신 인류의 소통 혁명은 인쇄술에 기반한 문자 대중화에서 비롯되었다. 인쇄기의 발명으로 책이 무한 복제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책이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책은 점점 더 많이 번역되었고 또 기록되었다. 문자가 곧 소수의 권위와 특권을 유지하는 권력이던 시대는 더는 존재할 수 없었다. 물론 이런 문명을 지탱한 숨은 조력자는 바로 종이였다. 늘어난 책의 수요를 오롯이 종이가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제한된 지면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사람들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서체의 개량도 이어졌다. 인쇄술은 인류 지식의 대중화를, 번역은 인류 지식의 확산과 공유를, 기록은 인류 지식의 전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매체와 서체는 그 시대의 기술을 반영하였다. 우리는 이 장대한 서사의 과정을 문자가 이루어낸 ‘문명의 혁명’, ‘문화의 혁명’으로 명명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과 문화혁명의 과정을 지나, 오늘 우리는 프로세스 (Process), 서비스(Service), 플랫폼(Platform)으로 대변되는 디지털시대의 중심에 서 있다. 전통적인 방식인 문자와 글쓰기로 이뤄진 휴머니즘과 ‘구텐베르크적 문화’에서 컴퓨터와 디지털 코드로 대변되는 이른바 ‘텔레마틱적 문화’로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인류는 각기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시대에 맞게, 문자에서 기인한 기존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과 ‘익명성, 가상성, 모방성 등, 디지털시대의 역기능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문자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류가 어느 쪽의 주장에 손을 들어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중심에서 위대한 문명과 문화의 혁명을 이끌어온 ‘문자’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오늘도 그 역사적 사명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인류가 만들어 낸 문자는 단순한 문자가 아닌 위대한 인류의 역사이고, 이성이며, 철학이고,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자는 디지털시대가 아니라, 초디지털시대가 도래한다 해도 그 시대의 중심에서 본연의 사명인 그 시대의 문명과 문화의 혁명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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