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
지금 어디선가
누가 걸어간다
누가 걸어온다
눈 위에 발자국만 남겨놓고
지금 어디선가
누가 울고 있다
누가 웃고 있다
눈 내리는 깊은 밤
지금 어디선가
누가 죽고 있다
누가 낳고 있다
제야(除夜)의 종(鐘)소리 울리는 밤
지금 어디선가
누가 피를 주고 있다
누가 피를 받고 있다
초야(初夜) 청홍(靑紅) 자리 속에
지금 어디선가
누가 기-나긴 편지를 쓰고 있다
누가 기-나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고독(孤獨)에 떨리는 촉(燭)불 밑에
-전봉래, 「지금 어디선가」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그 친구는 전봉래입니다. 전봉건의 형이지요. 1929년 이장희가 음독자살하고 5년 후 김소월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시인은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까요. 현실 부적응자이기 때문이라 보기 십상이지요. 시인을 이상 세계에 사는 존재로 보니 말입니다. 이장희가 전근대적인 시대의 희생자라면 김소월은 제국주의의 억압이 하나 더 겹쳤습니다. 1951년 한국 전쟁 통 2월 어느 날 부산 스타 다방에서 친구도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그에게는 전쟁의 비극이 더해졌습니다. 페노바르비탈이라는 일종의 수면제를 다량 먹고 더 이상 살기를 포기한 것이지요. 그때 바흐의 브란덴브르크 협주곡 5번을 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다방을 나와 길거리를 헤매다 쓰러졌습니다.
시 「지금 어디선가」는 죽기 1년 전 『연합신문』에 실은 작품입니다. 그는 시 마지막 연에서처럼 촛불을 켜놓고 긴 시간 편지를 쓰며 삶과 죽음의 노래를 읊조리고 있습니다. 그는 특별한 현재를 사는 시인입니다. ‘지금’이 중요하지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이 있고, 슬픔 속에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쁨을 누리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 깨닫습니다. 해 저무는 세모에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은 또다시 태어나고, 초야에 오갔던 사랑처럼 피로 맺어진 모든 사람과 순간을 같이 함으로써 영원을 생각합니다.
그는 어쩌면 셰익스피어 시대 존 던은 아닐까 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궁금해했던 시인의 노래가 그의 짧은 생애를 휘감고 돕니다. 어릴 때 기계체조 선수였는데 철봉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이후 그의 삶도 굳어만 갔습니다. 그가 애창했던 랭보도, 발레리도, 쉬페르비엘의 시는 이제 들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바쳤던 헌시 「G 마이나」 만이 귓전을 맴돕니다. “물/닿은 곳//신고(神羔)의 구름밑//그늘이 앉고/묘연(杳然)한/옛/G•마이나”. ‘G 마이너’는 바이올린 소나타의 첫 음으로 ‘시작’, ‘창조’를 뜻합니다. 친구는 내 시의 시작이자 창조의 동반자였습니다. 그리고 ‘G 마이너’ 화음에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담았던 것처럼 애도합니다. 모두 처음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김종삼을 대신해 씁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