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뭘 모르고 하는 소리
가난, 뭘 모르고 하는 소리
  • 이세인 기자
  • 승인 2024.03.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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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디어가 다루는 빈곤함이란 그나마 형편이 있는 자들의 궁핍이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회사 비품이나 사무용품을 훔치는가 하면, 무료나눔 물건을 돈을 받고 재판매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돈은 말하지만, 가난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SNS에 종종 ‘가난한 이유’라는 제목의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는 글을 올리거나, 이상적인 부모의 월급을 언급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글들을 올리곤 한다. 그렇게 홍수처럼 밀려드는 글들 속에서 정말 ‘가난’한 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은 잠깐의 동정 어린 목소리만 더할 뿐이다. 가난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실상은 외면하는 것이다.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가난한 청소년이 청년이 되면서 처하게 되는 문제, 우리 사회의 교육·노동·복지의 실상을 담아냈다. 가난을 둘러싼 겹겹의 현실에 대한 철저한 해부이자 날카로운 정책 제안인 동시에, 가난이라는 굴레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발견해내는지에 대한 일종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책에 소개되는 인물들은 각양각색이다. 빈곤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는 이미지가 단 하나로 수렴되지 않듯, 가난을 살아내는 이들의 이야기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채 일상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저자는 빈곤가정에서 자란 아이들과 10여 년간 만남을 지속하면서 그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동력이 무엇인지, 결핍이 어떻게 또 다른 결핍을 만들어내는지 나름의 설명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하는 이유를 빈곤가정과 개개인에게서 찾지 않는다. 그보다 주목하는 건, 가난이 어떤 문제들을 파생시키는지, 가난은 왜 끝이 나지 않는지, 거기에 사회의 개입과 관심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말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빈곤은 단순히 경제적 수치에 해당하는 저소득의 문제가 아니고, 그 영향력이 삶의 전반에 미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 실현이 번번이 좌절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오랜 시간 축적된 빈곤은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고, 거기서 만들어진 능력을 발휘해 사회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행복감을 추구하려는 가능성을 모두 훼손한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이 사회적 관계 안에서 형성한 정체성, 가치 등과 함께 신뢰, 협력, 상호작용을 통해 집단 안에서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개인의 사회적 입지가 사회적 자본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이에 저자는 현재 취약계층을 돕는 인프라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실제로 저소득층을 위한 음식, 생필품 등은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에서 더 활성화되어 있다. 민간의 도움이 정부의 지원보다 더 많아지면 지원금이 일정하지 않을뿐더러, 체계적인 관리가 미흡하다는 문제점이 생긴다. 하지만 더 우려되는 문제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시혜적 시선’을 경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빈곤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곤 한다.

하지만 가난을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가난의 탈피가 개인의 노력에 좌우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이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흔히들 빈곤층은 왜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고, 왜 절박한 순간에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왜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하지만 소외계층이 사회적 자본을 제대로 형성할 수 있을까.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이다.

하위계층의 문제이니 열심히 노력해서 상층에 올라서면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고 얘기할 수 있다. 만약 당신 가족의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거나 재능이 있어서, 혹은 가족 찬스를 이용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를 얻었다고 하자. 그 아이가 과연 이 불평등한 세상에서 혼자 행복할 수있을까? 사회에 불평등한 현상들이 쌓이고, 이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이 사회 전반에 누적되면 누구에게도 안전하고 좋은 사회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빈곤한 상황을 견디기 때문에 누군가의 풍요가 가능한 것’이라는 말을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렇기에 누구 하나 빠짐없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 책임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중요한 건, 더 나은 공동체는 더 많은 ‘가난’을 얘기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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