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잘 몰라도 괜찮다. 사람이 길인께.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안다 하는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귀인이니께. 잘 물어물어 가면은 다아 잘 되니께. <12쪽>
“평아, 오늘 애썼는데 서운했냐아. 근디 말이다… 열심히 지나치면 욕심이 되지야. 새들도 묵어야 사니께 곡식은 좀 남겨두는 거란다. 갯벌에 꼬막도 씨 마를까 남겨두는 거제이. 아깝고 좋은 것일수록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16쪽>
알사탕이 달고 맛나지야? 그란디 말이다. 산과 들과 바다와 꽃과 나무가 길러준 것들도 다 제맛이 있지야. 알사탕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져 불고, 네 몸이 상하고 무디어져 분단다. 아가, 최고로 단 것에 홀리고 눈멀고 그 하나에만 쏠려가지 말그라. <32~33쪽>
책의 행간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169쪽>
울 엄니와 나는 ‘좋은 부모’도 ‘좋은 자식’도 아니었다. 그저 말없이 곁을 지키며 함께했고 서로를 향해 눈물의 기도를 바쳐줄 뿐이었다. 어머니가 내게 좋은 자식이 되어주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나는 나 자신이 되고 나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다. <225쪽>
인간에게 있어 평생을 지속되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소년 소녀 시절이다. 인생 전체를 비추는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의 틀이 짜여지고, 신생新生의 땅에 무언가 비밀스레 새겨지며 길이 나버리는 때. 단 한 번뿐이고 단 하나뿐인 자기만의 길을 번쩍, 예감하고 저 광대한 세상으로 걸어나갈 근원의 힘을 기르는 때. 그때 내 안에 새겨진 내면의 느낌이, 결정적 사건과 불꽃의 만남이, 일생에 걸쳐 나를 밀어간다. <239~240쪽>
너무 과열되고 너무 소란하고 너무 눈부신 이 진보한 세계 가운데서 우리 몸은 평안하지 못하다. 우리 마음은 늘 초조하고 불안하여 안식하지 못한다. 아이들조차 성공을 재촉당하고 과잉된 보호와 기대 속에 스스로 부딪치고 해내면서 제 속도로 자라지 못한다. <243쪽>
오늘도 이렇게 몸부림치며 쓰는 건 내 안에 품어온 오래된 희망의 불씨가 있기 때문이다. 가이 없는 우주의 한 모퉁이 지구의 오직 그 장소 그 시간에 내가 겪은 세상과 시대, 내가 만난 인간의 분투와 경이를 기억하고 전승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체험과 증언이 있고, 나에게 계승된 한의 사랑과 비밀한 전언이 있기 때문이다. <246~247쪽>
[정리=이세인 기자]
『눈물꽃 소년』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펴냄 | 256쪽 |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