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내 이야기를 못 믿을 거다. <첫문장>
「엄마,」 나는 신중히 말을 고르며 물었다. 「정지 신호가 정확히 무슨 색이지?」
엄마는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더니, 딱 노리스처럼, 무슨 말장난인지 가늠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파란색, 그냥…… 평범한 파란색.」
「다른 색도 있지 않아?」 내가 유도했다. 「뭐…… 빨간색이라든지?」
엄마는 눈썹을 치켜들더니 문득 불길한 징조를 읽은 것처럼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노트북을 닫았다. 「어디 안 좋니, 애시?」 <28~29쪽>
「쿼트가 널 현재 우주의 중심이라고 지목했어.」 에드가 말했다. 「전문 용어로는 주관적 중심부. 줄여서 주심. 넌 주심인 동안 현실을 재정의하고 〈그런〉 것을 〈그렇지 않은〉 것으로 만들지. 아니면 적어도 네가 그렇게 만들기까지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말이야.」 <136쪽>
그때 한 현실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쁘지도, 좋지도,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 궁금해했다. 실재하게 되면 어떨지 절실히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 현실이 크고 심오한 변화를 불러오리란 걸 직감했다. 어떤 변화일지는 몰라도, 인과응보식 현실은 아니었다. 내가 알던 세계로부터 나를 훨씬 더 멀리 데려갈 현실이었다. <189쪽>
이렇게 해서 이전의 나와 더 이전의 내가 새로운 나를 알게 됐다. 에드워드 쌍둥이들이 계속 분열하는 동안 나는 그 반대로 해야 했다. 여러 자아를 하나의 ‘나’로 합쳐야 했다. 물론 억누르고 진압해야 할 자아도 있었다. 마약을 거래하고 남들을 업신여기던 자아 말이다. 하지만 이 자아, 성 소수자 자아는 딱히 잠재우고 싶지 않았다. 무지개 위에서 뛰놀고 싶은 건 아니어도, 그를 알아 가는 건 나쁘지 않았다. <213쪽>
아서왕도 내심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지 않았다면 바위에 박힌 전설의 검에 손도 대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주심은 무기를 휘두르는 존재를 의미했다. 나는 이미 그 무기를 사용해 세 사람을 제거했다. 이제 나는 그 힘을 이용해 더 나은 세상을 얻어서 그간의 잘못을 만회해야 했다. <317쪽>
인류 역사에서 서로가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는 결코 메울 수 없는 틈일까?
우리는 다른 이들의 다른 점은 비방하고 우리 사이의 다른 점은 미화한다. 우리는 〈그들〉을 한 상자에 넣고 나서 〈우리〉만의 상자들을 만든다. <362쪽>
[정리=한주희 기자]
『게임 체인저』
닐 셔스터먼 지음 | 이민희 옮김 | 열린책들 펴냄 | 416쪽 | 1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