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꽃보다 무릎: 김춘수, 「눈물」
[시민 시인의 얼굴] 꽃보다 무릎: 김춘수, 「눈물」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4.01.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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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발바닥만 젖어 있었다고 한다.

-김춘수, 「눈물」

꽃보다 무릎

시인에게는 몸에 새긴 감각이 있습니다. 김소월의 슬픈 노래는 숙모 계희영의 무릎에서 나왔습니다. 무릎 베고 누워 들었던 옛 노래와 이야기가 시 밑바닥에 잔잔히 흐르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김춘수의 무릎이 생각납니다. 김춘수를 꽃의 시인이라 합니다. 하지만 그 꽃은 자연 속 식물이 아닙니다.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지난 과거 그의 조각난 자아, 즉 분열된 존재를 표현하는 개인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꽃은 무의미 속에 가둔 자기 자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역사의 의미가 그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본 유학 중 사상범으로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합니다. 그때 무릎에 가해진 고통이 그의 시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시 「눈물」은 김춘수의 아홉 번째 시집 『처용』(1974, 민음사)에 실린 작품입니다. 무의미시 논리대로 과거의 상황이 환상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노래하는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새가 되었다고 한다”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요. 이처럼 그의 시는 오리무중입니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반복되고 있는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그의 다른 시에서도 보입니다. 그만큼 시인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는 거지요. 시 제목 ‘눈물’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의 몸(무릎)에 가해진 폭력의 실상이 아닐까요. 그만큼 잊히지 않고 그를 고통 속에 몰아넣는 역사의 악몽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갑남을녀’처럼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는 말은 성애적 의미이기보다 고통으로 흥건한 흔적이 아닐까요. 그것은 예수의 행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김종삼은 시 「파편-김춘수씨에게」에서 그를 ‘세자르 프랑크의 별’이라 부릅니다. 세자르 프랑크는 바흐이래 가장 뛰어난 오르간 작곡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흥 연주에 뛰어났다고 하니 김춘수를 김종삼도 그렇게 여겼나 봅니다. 파편화된 삶 속에서 김춘수의 시가 ‘의연하고 아름답다고’ 추앙합니다. 이처럼 김춘수의 시는 삶의 허무 속에 핀 꽃과 같습니다. “비 개인 다음의/하늘을 보라. 비 개인 다음의/꼬꼬리새 무릎을 보라. 발톱을 보라. 비 개인 다음의/네 입술/네 목젖의 얼룩을 보라. 면경(面鏡)알에 비치는/산과 내/비 개인 다음의 봄바다는/언제나 어디로 떠나고 있다(「거리에 비내리듯」). 이 시는 또 어떤가요.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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