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경에 관심 있는 이들이 늘어나며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정보와 노하우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환경에 가해지는 악영향이 그에 못지않음에도 우리의 의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다뤄지지 않았다.
특히 분리배출 법이 그렇다. 배달 용기의 경우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구거나 기름기를 닦아서 플라스틱류로 배출한다. 실링된 비닐이 잘 분리되지 않는 배달 용기가 많은데, 해당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고 배출하면 된다. 비닐이 용기 끝에 조금 붙어 있어도 재활용은 가능하다. 플라스틱 배달 용기는 보통 폴리프로필렌(PP) 재질인데, 비닐 재질인 폴리에틸렌(PE)과 성질이 유사해서 재활용에 큰 문제가 없다. 물론 오염이 심한 경우는 재활용이 어렵다.
그렇다면 옷은 어떨까? 우리는 초록색 헌 옷 수거함에 합성 섬유로 만들어진 옷을 꾸겨 넣으며 옷도 배달 용기와 마찬가지로 분리배출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그렇게 옷은 분리배출 대상에서 빠져나간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 이소연은 8년간 입어 온 떡볶이 코트와 작별을 결심했다가 헌 옷 수거함 앞에서 막막해진 경험을 털어놓는다.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고 난 후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사이에 낀 미끄덩한 기름띠를 보고 있노라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아무리 용기를 깨끗이 씻고 말려서 비닐을 제거해 배출해도 그렇다. 그런데 떡볶이를 배달한 뒤에 남는 쓰레기보다 더 답이 없는 건 떡볶이 코트다 (…) 떡볶이 코트를 버리려고 살펴보니, 겉은 모직 재질이지만 안감은 보온이 되는 누빔이었고, 그 안을 뜯어보니 납작하게 눌린 누런 솜이 종이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단추는 플라스틱이었고, 단추와 코트를 이어주는 실은 지푸라기 모양새를 한 인조섬유였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을 헌 옷 수거함에 넣지 않고 일일이 분리배출한다고 생각해보라. 옷을 든 당신이 분리배출함 앞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옷은 단일 천으로만 이뤄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섬유, 접착제, 지퍼, 단추 등 갖가지 부속의 조합이다. 정교하고 비싼 옷일수록 여러 재질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면 100퍼센트의 티셔츠, 데님 원단 하나만 사용한다는 청바지도 폴리에스테르 봉제실을 사용해 라벨을 붙인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제목처럼 더 이상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다. 20대 내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매일같이 옷을 사 모으던 그에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쇼핑중독에 시달렸던 시절을 회고하며 그 때의 욕구와 심리를 파고든다.
“난 ‘언제나’ 옷을 샀다. 길을 걷다 껌 한 통을 사는 것만큼 옷을 사는 게 쉬웠다. 하지만 끝내 행복해지지 못했다. 나만의 개성을 찾지도 못했다. 그저 하루살이처럼 매일 업데이트되는 쇼핑몰의 저렴한 물건을 근근이 주워 담을 뿐이었다. 갈수록 빨라지는 패션을 따라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이, 내 행복은 옷장 속 어딘가에 파묻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생명을 잃어갔다.”
사계절의 구분, 각종 패션 앱과 당일 배송의 유혹, 유행의 압력 등이 굳건히 존재하는 사회에서 벌써 5년째 새 옷 구매 없이 생활한 끝에, 옷을 산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며 옷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표현을 억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가 간과한 새로운 선택지, 제로웨이스트 의생활의 가능성을 독자 앞에 제시한다.
끝으로 저자는 옷이 아닌 다른 자원으로 새 옷을 만들거나 헌 옷을 다른 물건으로 재활용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고래의 생애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바다에서 태어난 고래는 죽는 순간까지 바다 구성원의 역할을 다한다. 깊이 가라앉은 자신의 사체로 바다생물들에게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삶의 시작과 끝이 생태계 전체와 연결된 고래의 생애는 순환경제라는 개념의 이상향을 비유적으로 잘 보여준다. 자원을 투입해 만들어낸 생산물이 수명이 다한 뒤 재생산에 이용되지 못한 채 폐기물로 버려지는 기존 방식과 달리, 순환경제는 쓸모를 다한 제품이 동일 품목을 만드는 데 재사용·재활용되도록 자원의 선순환을 구축한다. 개인이 옷을 사지 않거나 신중하게 구매하는 것으로 노력을 실천하는 동안, 기업들은 이렇듯 순환경제 모델에 접근해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옷의 시작과 끝을 연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래처럼 말이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