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지나가고 감염병과 관련해서 많은 책이 나오고 있다. 바이러스를 비롯해 세균 등 각종 병원체에 관한 책, 팬데믹 이후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방법에 관한 책, 역사 속의 감염질환에 관한 책... 『바이러스 대처 매뉴얼』도 그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잔뜩 쌓아놓은 책더미에 그저 한 권의 책을 얹는 것만은 아니다. 인류와 감염병과의 관계에 관한 내용이야 여느 책에서도 볼 수 있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것 자체로도 역시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모든 내용을 담아낸 책은 그리 흔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처럼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매뉴얼이 다. 매뉴얼은 사전에 재난 상황을 가정해 즉각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실수를 최소화하고, 때로는 완벽한 매뉴얼이 생명을 지키기도 한다. 모두가 전염병에 대해 바로 알고 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금, 『바이러스 대처 매뉴얼』은 ‘권장사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의무이자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규칙과 습관’이다.
내용을 보기도 전에 눈여겨볼 만한 점은 책 그 자체다. 책보다는 사전에 가까운 두께와 동화책 크기의 사이즈는 어딘가 모르게 듬직하다.
첫 장을 펼쳐보면, 차례 부분에 대처 매뉴얼을 한 장에 수록한 점이 눈에 띈다. ‘내 가족의 감염에 어떻게 대비하겠습니까?’ ‘어린이나 노인이 있는 경우의 대처법’ ‘직장에서의 예방 수칙과 대처법’, ‘내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 예방 대처법’ 등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꼼꼼하게 담았다. 이 밖에도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 인류를 위협하는 새로운 바이러스, 동물 매개 감염병, 역사 속 감염병과 팬데믹, 감염병 치료와 예방을 위해 꼭 알아야 하는 정보 등 팬데믹 시대 속 바이러스에 대한 상식적인 내용도 담겨있다.
바이러스만 다루는 건 아니다. 생활 속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물질의 심각성도 얘기한다. 감염병만큼 위협적인 라돈, 농약과 살충제, 현대인의 질병 원인인 환경호르몬, 미세먼지까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생활화학물질을 알려주고, ‘생활 속 유독물질에서 벗어나는 10가지 방법’으로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바이러스와 감염병을 대하는 새로운 윤리 체계다. 전문가들은 신종 바이러스의 공격이 언제든 또다시 닥쳐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심각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8개의 바이러스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에볼라, 메르스, 사스 등이 포함되었는데, 목록의 마지막에는 ‘질병X’라는 미지의 바이러스가 소개됐다. 질병X는 현존하는 질환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다. 전문가들도 잘 모르는 신종 병원균에 의해 심각한 국제적 유행병이 창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실제로 일 년 뒤인 2019년, 질병X는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질병X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른 이름으로 등장할 것이다.
매뉴얼은 ‘해왔던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존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일을 더 나은,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우리는 앞으로 새로운 감염병을 계속해서 겪으며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직면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좀 더 지혜롭고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지금, 매뉴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독서신문 이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