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시험에 떨어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도로시는 수레와 집게 그리고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밤길을 활보한다. 의류수거함 속의 헌 옷을 빼내어 구제 의류샵을 운영하는 마녀에게 팔아넘기기 위해서다. 배짱이 두둑한 도로시를 보며 관객은 가슴을 졸이지만 다행히 전기충격기를 쓸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비록 현실의 밤은 춥고 흉흉할지라도 뮤지컬 <오즈의 의류수거함> 속 밤은 따뜻하고 정답다.
그러던 어느 날 도로시는 195번 의류수거함에서 핸드폰과 상장,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물건의 주인이 자살을 결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로시는 그를 ‘195’라고 부르기로 하고 195를 구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195는 왜 의류수거함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을까? 외로운 사람일수록 온수 샤워를 오래 하는 것처럼, 반려견이 보호자가 벗어놓은 외투에 몸을 파묻는 것처럼, 헌 옷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온기에 자연스럽게 끌린 건 아닐까? 자신도 모르게 살려달라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수 없이 고민하고 망설이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말려주길 내심 바랐을 테니까.
도로시의 계속되는 연락에 195는 제발 그만해달라고 선을 긋는다. 도로시는 195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니 딱 한 번만 자신을 만나달라고 애원한다. 결국 195를 만난 도로시는 퀴즈 하나를 낸다. “의류 수거함의 의미는 뭘까?” “수익 사업?” “아니.” “환경 보호?” “그것도 땡!” “그럼 도대체 뭐야?” “나눔이지. 나누는 마음. 누군가에게 필요 없다고 여겨져 버려진 것들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도로시는 195에게 헌 옷을 훔치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195는 도로시와 의류 수거함을 찾아 밤 거리를 누비며 헌 옷처럼 버리려고 했던 자신의 삶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침내 서서히 살아갈 용기를 되찾는다.
도로시가 신경 쓰는 사람은 195뿐만이 아니다. 폐지 줍는 할머니 집의 고장 난 보일러를 바꿔주기 위해 밤 친구들을 모아 부잣집 동네의 의류 수거함을 턴다. 의류 수거함에 옷을 버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할머니를 도와주게 된다. 어두운 무대 위 알록달록한 옷이 휙휙 날아다니는 순간, 관객석에까지 헌 옷이 품은 온기가 퍼진다. 모두를 아울러 서로 보듬게 하기. 이것이 도로시가 밤의 세계에 햇볕을 드리우는 방법이다.
이 뮤지컬의 원작은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유난히 밝고 낙천적인 동명의 소설은 신나는 춤과 노래와 만나 더 흥겨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등장인물은 모두 힘든 상황에 있지만 시종일관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으며 소외된 이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뮤지컬 <오즈의 의류수거함>은 추운 연말,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당신에게 따뜻한 손을 건넬 것이다. 11월 3일부터 12월 31일까지 약 두 달간 대학로 시온아트홀에서 공연되며, 인터파크티켓, 네이버예약 등에서 예매할 수 있다.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