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당신의 생각이 낙서가 될 때 일어나는 일
[책 속 명문장] 당신의 생각이 낙서가 될 때 일어나는 일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12.11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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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결국 내가 버찌를 손에 쥘 수 없었던 것은 나 말고도 나무에 손을 뻗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일찍 아침을 시작하는 부지런한 이도, 나보다 더 키가 큰 사람들도 숱하게 있었을 것이다. 내 삶의 주변에 열매를 먼저 채갈 만한 의외의 가능성들이 존재한다는 것. 나처럼 열매를 따고 싶어하는 동시대 사람들의 열망이 있다는 것. 타인에 대한 이해가 절실했다. 결국 디자인의 대상은 수많은 대중이지 않던가. <10쪽>

손으로 남들과 다른 신상품을 쓱쓱 그려줄 출중한 인재, 남과는 완벽하게 다르고 세상에 없는 형태를 생각해줄 마법사. 귀신처럼 만들 수 있는 그림과 도면을 구상해낼 마법사. 근거 없는 전설에 의하면 당시 뜨거운 물을 담아 손으로 들고 마실 수 있는 컵도 어느 공장에 나타난 마법사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손잡이’라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낸 마법사는 특별한 생각의 전문가들이었고, 훗날 우리는 이것을 ‘디자이너’의 탄생이라고 부른다. <42~43쪽>

디자이너에게 그림과 스케치는 선, 색, 공간 등을 자신의 내면의 생각을 구체화하는 방법이다.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되든 내면의 직관을 가장 열정적으로 그려내 보이는 스케치는 순수한 창작의 에너지, 직관을 통해 탄생되는 최초의 답안이다. 어쩌면 프로페셔널한 사명감 따위는 잊어버리고 어릴 적 그림을 그리던 천진한 순간으로 돌아가 몰입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첫번째 답안과 첫번째 그림은 나와 가장 가깝다. <120쪽>

오랜만에 연필을 쥐어보니 진정한 생각의 근본이란 느낌이 든다. 디지털의 감촉에 매몰되어 있다가 다시 손에 쥔 종이와 연필의 촉감이 나를 전율하게 한다. 심지어 흑연과 나무를 선사한 자연이 이용해야 하는 자원이 아니라 진정으로 아끼고 돌봐야 할 고귀한 존재로까지 인식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연필을 쥐고 쓰고 그리며 가치를 확장해서 얻게 된 깨달음이 반갑다. <151쪽>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직접 손으로 그려보고, 생각을 종이 위에 글로 써봐야 한다. 펜이 종이의 마찰을 따라 생각을 흘릴 때 촉각은 나의 생각을 폭발시킬 것이다. 연필심은 종이의 결에 부서지면서 그 흔적을 종이에 남긴다. 이처럼 우리도 사물과의 마찰을 체험할 때 비로소 우리의 생각을 둘러싼 껍질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164쪽>

이야기가 깃들 때 생각과 사물은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바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것들조차 예술이 될 수 있듯이 평범함이 예술적 가치의 옷을 입게 되는 방식도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평범함이 한순간 비장해지는 것은 예술가만의 이야기가 작품 위에 덧대어지기 때문이다. 예술을 말할 때 작가의 생애를 빼놓을 수 없는 것도 그의 일생이 작품의 형상을 넘어선 가치, 함축된 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322쪽>

[정리=한주희 기자]

『종이 위의 직관주의자』
박찬휘 지음 | 싱긋 펴냄 | 328쪽 | 1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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