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가족과 ‘잘’ 이별하기 위해서는…
지긋지긋한 가족과 ‘잘’ 이별하기 위해서는…
  • 한시은 기자
  • 승인 2023.12.0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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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제목만 본다면 가족에 관한 에세이인지, 영화작법에 관한 저서인지 알기 힘들 수도 있겠다. 열려 있는 제목만큼 이 책은 개인에 따라 다른 시선으로 읽힌다. ‘재일코리안’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카테고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주고 있는 이 책은 물과 기름 같은 아버지와 딸이 가족으로 완성 되어가는 이야기기도 하다.

양영희 감독은 ‘조선인 부락’이라 불리던 오사카시 이카이노(현 이쿠노구) 출신 재일코리안 2세로, 열렬한 조총련 활동가 부모 밑에서 자랐다. 일곱 살쯤, 세 오빠를 이른바 ‘귀국 사업’으로 북한에 떠나보낸 트라우마를 가졌다. 뉴욕과 도쿄를 오가며 자유로움을 누리지만, 김일성의 초상화가 걸린 부모님의 집에 오면 숨이 막힌다. 감독은 카메라를 든다. 그렇게 시작된 가족 영화 프로젝트는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한 편의 극영화를 완성하기까지 25년의 장대한 과업이 됐다. 이 책은 감독이 비로소 카메라를 내려놓은 후에 쓴 에세이다.

양영희 감독은 “나는 내 가족을 롱숏으로 바라보기 위해 렌즈의 힘을 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략) 부감하여 다각도로 보기 위해서는 밀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 눈이 아닌,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필터링해 멀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가족의 모습은 정면이나 옆에서 보는 것 보다 많은 것이 보일 테다. 감독은 “훈장을 단 아버지를 보면 잠옷 차림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혁명을 외치는 아버지도 평범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양 감독은 카메라 밖에 있다. 카메라 렌즈 안에 보이는 것은 가족들이다. “고통을 수반하는 딸의 행위에 한 번도 그만두라는 말 없이 렌즈를 받아들이는 데 얼마만큼의 각오가 필요했을까”라는 감독의 깨달음은, 그 렌즈 안과 밖에서 서로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결국은 일방의 넋두리가 아닌 쌍방의 ‘교신’이었음을 증명한다.

아버지가 투병을 시작하고 묵묵히 남편의 손과 발이 된 어머니. 양 감독은 깊은 슬픔을 느낀다. 삶이 피폐해지고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아버지는 돌아가신다. 어머니는 혼자가 됐다. 감독의 곁에는 카오루라는 일본 남자가 있는데, 그는 어머니의 외로움을 웃는 모습에서 감지한다. 가족사진에 둘러싸여 사는 어머니를 가여워한다.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이 양 감독을 매개로 가족이 되어 함께 밥을 먹는다.

오랜 시간 온 가족을 지탱하고 평생을 헌신했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는 망상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은 온화해져” 간다. 북으로 보낸 세 아들도, 남편을 잃은 것도 잊었다. 가족으로 인한 모든 “걱정에서 해방”됐다. 이는 어떤 사랑의 종말이면서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다. 책은 기도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길게 묘사하는 데서 끝이 난다. 상냥하고 온화하게 기도를 하는 어머니. 그동안 가족을 위해 해온 모든 행위가 사실은 기도였음을 깨닫는다. “남편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깨우고 꾸짖고 칭찬하는 그 모든 것이 기도”였다는 것을.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가족과 이미 가족으로 ‘정해진 채’ 살아간다. 하지만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독이 애쓴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윤곽 정도는 알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처럼. 우리는 가족의 윤곽을 더듬고 있을까. 아니면 부감하듯 멀리서 보고 있을까. 그것도 여의치 못하다면 등을 돌리고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이별은 찾아온다. 잘 이별하기 위해서는 잘 사랑해야 하고, 알아야 한다. 가족이라 해도,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를.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책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는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스며들듯 일러주고 있다.

[독서신문 한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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