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베스트 3’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베스트 3’
  • 한시은 기자
  • 승인 2023.12.03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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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가 실시한 ‘2023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이 12인의 추천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구병모 작가의 『있을 법한 모든 것』과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올랐다. 3위 가운데 국내 소설은 김연수 작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가 뽑혔다.

1996년에 등단한 권여선 작가는 한국 현대 소설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만의 엄정하면서도 수려한 문체와 눈앞의 광경을 직시하는 끈질긴 시선은 독자들을 익숙한 주파수처럼 길들이고 대체할 수 없게 한다. 『각각의 계절』은 작가의 일곱 번째 소설집으로, 책으로 묶이기 전부터 호평받은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렸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기억’이다. 권여선 작가에게는 낯설지 않은 화두다. 꽁꽁 묶어놨던 기억의 매듭을 작가는 자비 없이 풀어낸다.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총체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각각의 계절』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그 과정은 조용하고 치열한 생동으로 가득하다.

사랑해서 얻는 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 생각했다. 내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뇌를 젤리화하고 마음에 전족을 하고 기형의 꿈을 꾸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이 밑도 끝도 없이 샘솟았고 반희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뛰었다.

권여선, 「실버들 천만사」 中

구병모 작가의 『있을 법한 모든 것』은 ‘구병모스럽다’는 평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우리는 얼마 전 모든 삶의 방식이 ‘비대면’이었던 시간을 보냈다. 그때, 구병모는 오히려 더욱 강렬한 키워드로 환상과 실제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마치 냉동된 듯 살아가던 지난 3년, 언제나 독자들의 피부 아래 감각을 일깨우는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서 얼어있던 개인들이 녹고, 물이 되어 한데 섞였다. 그 뜨겁고 통렬한 작품들이 책에 실렸다.

절대로 그를 다시 받아들여서는 안 돼! 시원시원하게 발로 뻥 차버리고 너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 당당히 걸어나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성장형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줘…… 그러나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눈앞은 현실이었다. 어떤 감정은 상대방에 의해 자신이 하찮아지기를 감수하기도 하며, 그 상태에 적응하고 현실과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자신의 하찮음을 스스로 원한다고 착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구병모, 「니니코라치우푼타」 中

공동 2위인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작은 이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일렁이다 고개를 내미는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희미한 감정과 목소리를 건져 올리고 나면 환경, 즉 사회가 보인다. 섬세함이라는 옷을 입고 예리하게 사회, 타깃을 겨냥하면서도, 빛을 따라가는 최은영 작가의 이번 단편집은 최은영표 소설의 정수라고 할 만하다.

다희와 이야기할 때면 따뜻한 바닷물에 들어가 수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몸에 부드럽게 감기는 물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다희와 만나고 그녀는 지금껏 자신이 해온 대화가 사실은 서로를 향한 독백일 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 그제야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마음 안에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최은영, 「일 년」 中

3위는 김연수 작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였다. 작품은 김연수 작가의 기존 소설보다 독자에게 모든 면에서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와 있는 느낌을 준다. 이제는 소설이 ‘정신적 빵’이 되길 바란다는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이번 작품은 이유 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김연수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사랑이란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결심이다. 그게 우리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다. 사랑하기로 결심하면 그다음의 일들은 저절로 일어난다. 사랑을 통해 나의 세계는 저절로 확장되고 펼쳐진다.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中

[독서신문 한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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