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면 ‘정치’ 하세요
외롭다면 ‘정치’ 하세요
  • 한시은 기자
  • 승인 2023.11.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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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우울증 환자 수,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 극심한 양극화로 나아가는 대한민국. 반면, 영화‧음악‧스포츠‧게임, K-문화로 세계를 주도하며 문화 강국으로 거듭난 근사한 대한민국.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양면이다. 우리는 최근 성난 개인들이 일면식도 없는 다른 개인들을 위협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인공지능과 가상 세계…초연결된 우리가 어째서 고립감에 시달리고 서로에게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두르고 있을까.

철학자이자 작가인 ‘한나 아렌트’를 오랜 시간 연구한 이인미 성균관대 교수가 쓴 책,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수업』에 따르면 오늘날의 외로움은 “다양한 문제의 기원”이다. 그는 한나 아렌트의 사유와 저서의 내용을 빌려, 이 “시대의 병증인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정치’를 꼽는다. 외로움과 정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저자는 차근차근 그 상관관계를 밟아나간다.

저자에 따르면 아렌트는 “인간의 행위 자체가 정치”라고 표현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창시한 “정치적 동물”인 인간이 누구와도, 자기 자신과도 접촉하지 않는 외톨이가 되는 순간 사고하는 능력도 잃게 된다. 옳고 그름이 사라진다. 자기 자신이 사라졌으니 ‘우리’라는 개념도 없어진다. 폭력은 이런 틈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외로움은 왜 정치와 맞닿는가. 아렌트는 행위가 정치가 되기 위해 ‘용서’와 ‘약속’을 언급했다. 선거운동이나 공천과 같은 의미의 현실정치가 익숙한 이들을 포함해, 누구에게든 이는 상당히 감성적으로 들릴 것이다. 저자는 “정치에는 극적 반전을 품은 감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행위를 하고, 행위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고,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행위를 정정한다. 아렌트는 그래서 ‘용서’를 말한다. 인간은 늘 실수하고 오류를 일으키기 때문에 수시로 용서를 받으며 산다. 저자는 “‘정치적 삶으로서 행위’를 시작한 사람은 용서 때문에 주저 없이 행위의 공간에 들어선다”고 적는다. 이는 고립과 반대되는 상황으로, 바로 여기서 외로운 개인에게 왜 정치가 필요하며,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물론 아렌트가 말하는 ‘용서’는 극단적 범죄나 의도된 악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전한다.)

행위를 정치로 만드는 또 다른 개념인 ‘약속’은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다. 오늘 나와 저녁을 먹기로 한 친구가 나를 해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에게 어두운 마음이 있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전제로 인간은 모든 종류의 언약과 계약과 공적‧사적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다. 이 약속은 책임과 신뢰와도 맞닿는다. 이 연결구조가 올바르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정치적 품격”이 드러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인간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공간은 정치적 공간이 된다. 아렌트는 나와 이웃이 같이 있는 세계를 정치적 공간으로 간주했다. 서로의 오류를 ‘용서’하고,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마음을 믿는 ‘약속’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치적 공간. 그런 사회에서는 외로움이 눈덩이가 불어나듯 불시에 모든 인간적 연결을 망가뜨리는 위협으로 닥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 행위를 포기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고립되고 단절된 채 현실정치에만 몰두하는 동안 세상이 나아졌는지 저자는 묻는다. 외롭고 성난 개인이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매우 단순하다. 정치는 고립된 혼자가 아닌, 여러 인간이 함께 있는 곳에서 발생하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자유가 자유일 수 없는 것처럼.

[독서신문 한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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