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내향적 인간 둘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내향적 인간 둘
  • 스미레
  • 승인 2023.11.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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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왜 활동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그렇게 애를 썼던 것일까?

힙 플레이스도 좀 가보고 괜찮은 모임에도 얼굴을 내미는 사람, 이왕이면 그런 존재로 비치고 싶어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물론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나는 거기서 재미를 찾는 데 실패했다. 나도, 너도, 맥락도 없는 놀이는 대체로 피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노는 것 중 최고는 나 자신과 잘 노는 것’이라는 진리 하나는 건질 수 있었다. 결국, 내적 흥이 오르는 지점을 아는 것도, 그걸 느끼는 것도 나 자신이니까.
 
그즈음 남편을 만났다. “저는 집순이예요.” 뜸 들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성토해버렸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은 집순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던 시절이다. ‘혼자’가 트렌드인 지금과 달리, 그 당시만 해도 이런 사람은 히키코모리나 지루한 인물로 쉽게 낙인찍히곤 했었다. 그리하여 이 고해성사는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외향적인 가면을 쓰고 허세를 부리던 당시의 나에겐 더욱.

그와는 스미듯 가까워졌다. 조심스레 시작했고 뜸 들이듯 탐색했다. 행여나 무른 마음에 상처라도 생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많은 내향인이 그렇게 옷깃을 여미지 않던가. 내게 잘 맞는 사람이란 걸 깨닫는 어떤 계기가 없으면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다.
 
만인의 연인이 되려는 공산 없이, 딱 한 줌의 사람에게만 호기심과 애정을 쏟는다.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맞지 않는 이에게까지 에너지를 짜내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나는 한 사람이 올 때면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 품고 있는 모든 것이 함께 온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마치 해일처럼 느껴져 겁이 났다. 그 감정의 파동만으로도 장거리 달리기를 한 것처럼 기진맥진해져, 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단언컨대 나는 야구장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 많은 사람 틈에서 고함을 지르며 몇 시간 동안 진을 친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그와 함께 야구장에 다니고 사회인 야구 모임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남편이 나와 함께 미술관에 다니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남편은 보통의 이십 대와 달리 탈색된 주말을 보내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무리한 계획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긴 드라이브를 하고, 강가를 걷고, 서점에 갔다.
 
눈앞에 앉은 내가 생각에 잠겨 멍한 표정이 되어도 그는 나를 불러내지 않았다. 나 역시 그가 바쁠 시간에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오랫동안 말도 놓지 못했지만 불편한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를 마구잡이로 침해하지 않는 우리는, 닮아서 편했다.
 
학창 시절 나의 우상이 랭보였다면 남편의 우상은 마이클 조던이었다. 랭보와 조던, 그 둘의 거리는 대서양만큼이나 멀지만, 이들을 향한 우리의 열정의 깊이는 비슷했다.
 
내가 시집을 끼고 다녔듯 남편은 농구공을 들고 다녔고, 내가 도서관에 머문 시간만큼 남편은 농구 코트에서 시간을 보냈다.
 
통한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으리라. 이상을 향한 조용한 헌신.

‘취미는 달라도 취향은 같아’라는 유행가 가사를 어린애처럼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영혼의 공명, 소울메이트, 이런 말을 판타지처럼 섬겼다. 그러나 현실은 남편은 영화관에서 자고 나는 야구장에서 잔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 많은 곳을 질색하지만, 남편은 대수로워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고를 때 남편은 성능을, 나는 디자인을 봤다.
 
당혹스러워도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 억지를 부리진 않았다. 사소한 다름은 관계의 양념이 되기도 하니까. 눈송이의 모양이 전부 다르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물며 개인을 이루는 색조와 성분은 그보다 훨씬 무궁무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와 닮은꼴인 그를 볼 때면 안도가 몰려왔다. 더하기보다 덜기를, 북적임보단 한적함을, 말하기보다 듣기를, 빠름보다는 느림을, 원색보다 무채색을 선호하는 내향적 인간 둘.

우리는 달라서 끌렸고 닮아서 끌렸다. 모두가 똑같다면 세상은 지루해질 테고, 모두가 극렬히 다르다면 관계는 전쟁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끌림에는 이유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취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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