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토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저 자기관리를 조금 열심히 할 뿐이었으니까.
-정예헌,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中
‘뼈말라’와 ‘프로아나’. 요즘 10대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용어들이다. ‘뼈말라’는 뼈대가 다 드러나도록 마른 몸매를 뜻하는 것이고, 프로아나는 찬성한다는 의미의 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Anorexia의 합성어다. 이들은 정상체중보다 최소 10kg 이상이 덜 나가는 것을 이상적인 몸무게로 생각한다. 음식을 씹었다가 도로 뱉는 ‘씹뱉’과, 먹었다가 도로 토해 내는 ‘먹토’로 체중을 낮춘다. 그리고 마른 몸매의 ‘핏’을 온라인에 사진으로 인증한다. ‘좋아요’를 눌러주며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준다. 이 혹독한 자기통제는 ‘자기관리’의 하드코어 버전이다.
중학생 때 몸이 닿기만 해도 더럽다는 듯 털어내던 같은 반 아이를 기억한다. 음식을 먹는 모든 순간, 내면에 장착된 CCTV가 돌아간다.
-김소민,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中
아름다움은 시선의 통제와 맞닿는 개념이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감시하는 사령관의 다른 이름. 이 통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사람들도 있다. 책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는 수없이 반복되는 실패를 인정하고, 식이장애를 벗어나기 위해 재도전을 반복한 ‘자기 돌봄’ 에세이다. 책에 따르면, 이 일은 마음을 먹는 순간 마법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매일 실패하고 매일 도전해야 한다.
한동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러나 사람의 의지가 강철이라도 될까. 아니, 강철도 꺾어진다. 사람이 그보다 강할 수야 없다. 하물며 마음의 결핍을 체중의 결핍으로 갈아 끼운 10대들은 더욱 약할 수밖에. 매일의 몸무게를 체중계로 측정해 눈으로 확인하는 해롭고 중독적인 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 다시 ‘먹토’를 하고, 결국 체중계 위에 올라선다. 하지만 실패해 주저앉는다고 나약한 것이 결코 아니다. 아니, 나약해도 된다.
쫓기듯 허덕대는 날이 대부분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마음, 내 기분이 먼저다. 내 마음을 돌보는 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기 전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필수조건이다. 무엇보다, 다 이룰 필요 없다. 아무도 그렇게는 못 산다.
-정예헌,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中
먹지 않으면 체중을 뺄 수 있다는, 내 몸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세상에서 오래 있었다면, 그 반대로 생각하기도 쉽다.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고, 먹고 씹고 삼키지 않기로 마음만 먹으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많은 ‘탈프로아나’를 꿈꾸는 이들이 실패에 허덕이고 좌절하고 아파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일 수 있다는 인정, 우리는 나약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다는, 나를 위한 부분적인 포기다. 모든 걸 놓지 않는다면 괜찮다. 식이장애뿐 아니라 다양한 장애물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실패했다는 것은 시도했다는 것이고, 좌절했다는 것은 나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는 뜻이니까.
세상이 나를 존엄하지 않게 대하더라도 나를 존엄한 존재로 선언하겠다는 결단. 그 결단은 매 순간 흔들릴 거다. 매 순간 질 것 같다. 그런데 질 줄 알면서도 애써 보는 수밖에 없다.
-김소민,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中
두 작가는 모두, 계속 흔들릴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먹은 것만으로는 잘 되지 않는다고. 결국 매일 만나는 새로운 자신과 계속 다짐해 나가는 것,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며 하루하루를 고치다 보면 제법 강인해져 있을 수 있을 테니 괜찮다. 그것을 믿고 몸보다 내 마음을 먼저 살찌울 수 있다면, 체중계 위에 다시 올라가 버렸다고 해도 괜찮다. 그 위에 영원히 올라가 있지 않을 테니.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독서신문 한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