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 입고 운동해도 될까요?
레깅스 입고 운동해도 될까요?
  • 한시은 기자
  • 승인 2023.10.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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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열풍은 여전히 뜨겁다. 그것에서 파생된 바디프로필 유행 역시 운동의 원동력,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수분까지 빼내 체중을 줄이고, 단백질로 식단을 채우고 탄수화물을 제한한다. 실제로 보면 불쌍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마른 몸에 갈라진 근육만을 남기고 조명과 태닝크림으로 그럴싸한 실루엣을 만들고 인증샷을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신체를 단련할 수 있다는 것. 그럴 만한 시간, 돈, 환경, 평화, 건강한 몸이 내 손안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다는 것. 이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기만 한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147쪽>

책 『나의 친구, 스미스』 속, 동네 헬스장의 ‘스미스 머신’을 친구 삼아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하는 7년 차 회사원인 주인공 ‘U노’. 미용과는 담을 쌓고 운동에 빠져 있던 그녀는 조금 더 체계적으로 단련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보디빌딩에 도전하나 그곳은 예상과는 다른 세계다. 일견 ‘여성다움’과는 상관없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직원은 계속해서 새로운 비키니를 들고 왔다. “아니, 음, 반짝거리지 않는 재질이면 좋겠는데요.” “손님. 그래가지곤 못 이겨요.” <76쪽>

주인공은 강인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했지만 그 과정에서 긴 머리와 필요 이상의 과도한 미소, 하이힐과 제모, 태닝 등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주인공은 또 다른 자신 역시 만나게 된다.

주인공은 웨이트 트레이닝 ‘헬친(헬스 친구)’, S코를 부러워하면서도 내심 한심해한다. S코는 워킹 풍경부터 유기농 식생활, 대회에 대비한 컨디셔닝 등 모든 것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곧, S코보다 한심한 건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살펴보는 자신이라는 딜레마를 인정한다.

약 1년 전, 처음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을 때 기자의 고민도 이와 비슷했다. 유행에 따라 레깅스를 입어야 할지, 편한 트레이닝복을 입어야 할지를 자주 고민했다. 헬스장에는 이미 완성된 몸을 가진 레깅스를 입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근력을 키우기 위해 웨이트를 시작했잖아.’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간 날, 주눅이 들어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실제로는 그다지 서로를 신경 쓰지 않지만, 레깅스를 입었을 때 운동하는 재미가 더해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헬스 커뮤니티에는 뭘 입어야 하는지, 불특정다수에게 조언을 구하는 여성회원들의 글이 많았다. 남성 회원들은 전혀 쓰지 않는 글들이었다.

나는 하이힐과 화해했다. 출퇴근 때 신는 구두 말고도 집에서 실내용 하이힐을 신고 생활한 것이다. <109쪽>

주인공은 대회 준비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수행해야 할 여성다움을 맹렬히 거부하기 보다는, 인정과 타협 속에서 혼란을 느낀다. 꾸밈에 지쳐 있으면서도 꾸밈이 없는 내 모습이 썩 달갑지는 않은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남자 동료가 지나가면서 건넨 “여자들은 힘들겠어요.”라는 위로를 들으며 주인공은 옅은 불쾌함을 느끼고, 자신이 힘든지를 생각한다. 고민하던 그녀는 ‘힘든’ 운동을 하면서 깨닫는다. “여자들은 힘든가? 분명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네가 말하는 ‘힘들다’와 지금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들다’는 아마 다른 얘기일 거야.”

결국 운동하는 자신을 움직이는 건 중량을 더한 무게의 기구를 힘겹게 들며 흘리는 땀, 한 개를 더 들어 올려 세트 수를 채웠을 때의 성취감이라는 것을 느낀다. 잠시 잊고 있던 운동의 본질과 맞닥뜨리는 지점이다.

“하이힐이나 제모나 태닝은 그래도 이해가 가요. 하이힐을 신으면 다리가 길어 보이고, 제모를 하면 커팅 윤곽이 또렷해지고, 태닝을 하면 온몸이 탄탄해 보이고. 하지만 일부러 웃고, 쉴 새 없이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큼지막한 액세서리를 달고, 가부키 배우처럼 짙은 화장을 하고, 그런 건 그러니까, 근육이랑은 상관없잖아요?” <133쪽>

반발과 타협을 오가던 주인공은 결국 마지막 대회에서 무대로 나가며 귀걸이와 하이힐을 벗어 던진다. 기행으로 마무리된 대회. ‘그런 선택도 현대적인 것’이라는 동료의 건조한 위로도 이어진다. 다시 처음 웨이트를 시작한 헬스장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단련해야 할 자신의 신체와 눈앞의 기구, 스스로가 정한 이상적인 몸에만 신경 쓰겠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맞닥뜨린, 딱히 누가 잘못한 것이 아니기에 추궁할 대상이 불분명했던 위화감이 내 안에 줄곧 응어리져 있었다.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랐으며, 결국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160~161쪽>

레깅스 입고 운동해야 할까, 트레이닝복을 입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레깅스를 입고 운동을 해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해도 된다. 타인에게 허락받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덜어내고, 운동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운, ‘즐거운 고통’을 느낄 수만 있다면.

[독서신문 한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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