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디지로그’ 시대의 독서신문
[발행인 칼럼] ‘디지로그’ 시대의 독서신문
  • 방재홍 발행인
  • 승인 2023.11.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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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홍 발행인

요즘 거리엔 선뜻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식당이 늘었다. 이유는 바로 키오스크. 어딜 가나 키오스크를 볼 수 있게 됐다지만, 사람 대신 키오스크 홀로 손님을 맞이하는 식당에 가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움츠러든다.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해 연구와 개선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것을 보면 이런 기분을 나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만 느끼는 건 아닌 듯하다.

1970년 11월 8일 창간된 독서신문이 벌써 반백 년 하고도 삼 년을 더 달려왔다. 역동의 세월 속에서 흑백 타블로이드판 신문은 매끄럽고 화려한 컬러 잡지로 변했고, 독서신문은 새로운 뉴스 소비 패턴에 맞춰 PC, 모바일은 물론 SNS 채널 등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다만, 애초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태동한 뉴미디어와 비교하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순간순간 생존법을 바꾸는 순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19와 함께 보낸 약 3년은 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그러한 한계를 한층 더 절감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편리한 키오스크를 벽처럼 느껴 주변에 도움을 구하는 내 작은 절망에서 언뜻 독서신문의 희망을 보기도 한다. 올해 ‘4050 책의 해’를 맞아 열린 전문가 포럼을 들어보니, 최근 몇 년간 전체 연령대의 독서율이 꾸준히 감소하는 가운데 40대 이상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감소폭이 특히 커졌다. 그런 한편 4050 세대의 60% 이상이 ‘독서는 삶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 있었고, 이들의 인터넷신문 이용률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당장은 삶에 치여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더라도, 가슴속의 지적 욕망은 살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마침 현재 독서신문 홈페이지 이용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세대도 4050이다. 여러 사정으로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비독자’ 상태라고 해도, 독서신문을 통해 연결되어 있으니 언제든 책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예비 독자’, ‘잠재적 독자’다. 혹은 이미 ‘독자’였더라도 독서신문이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그에 의지해 더 넓고 깊은 독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문에 나오는 문장처럼 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책의 미래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는 업계 종사자들도 장담하지 못한다. 과거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종이책은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이 나왔지만, 지금 전자책과 종이책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각자의 영역을 공고히 하며 경쟁자인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를 추진하는 와중,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선 디지털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교육 방식의 부작용을 염려해 종이책 위주의 교육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는 힘든 문제다.

故 이어령 선생은 2006년에 이미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디지로그’ 사회를 내다봤다. 다음은 『디지로그: 선언편』에 나오는 설명이다. “가령 아버지가 날이 더우니 바람이 들어오게 창문을 열라고 해서 창문을 열었더니 어머니가 와서 모기 들어온다고 닫으라 했다고 하자. 아이는 이럴 경우 창문을 닫아야 하는가, 열어야 하는가. 그 어느 쪽을 선택하든 해결은 되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분쟁만 커질 뿐이다. 이럴 경우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적인 선형적 사고(either-or)에서, 모순되는 두 개의 ‘이것과 저것(both-and)’을 모두 포용하는 순환적 사고로 가는 것이다. 선택이 아니라 창조로, 방충망을 해 닫으면 된다. 그러면 모기는 들어오지 못하고, 바람은 들어온다.” 쉬운 말로 우리의 굳어 있는 생각에 숨통을 틔워 주는 선생의 놀라운 혜안 역시도 결국 독서를 통해 길러졌다.

‘독서’의 세계에서 종이책의 아성이 예전 같지 않아져 아날로그 세대로서는 아쉬울 때도 있으나, 독서라는 개념이 시대 변화에 맞게 다층화되고 확장되고 있는 건 긍정적인 변화다. 다만 사회가 급변하다 보면 반드시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키오스크 붐 속에서 내가 그러했듯 말이다. 그러니 독서신문 앞에 놓인 사명은 분명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책’과 ‘독자’, 그 사이 어딘가에서 ‘책 읽는 대한민국’에 대한 창조적이고 포용적인 상상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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