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
만신(滿身)에 피를 입어 높은 언덕에
내 홀로 무슨 노래를 부른다
언제나 찬란히 틔어올 새로운 하늘을 위해
패자(敗者)의 영광(榮光)이여 내게 있으라.
나조차 뜻 모를 나의 노래를
허공(虛空)에 못 박힌 듯 서서 부른다.
오기 전 기다리고 온 뒤에도 기다릴
영원(永遠)한 나의 보람이여
묘막(渺漠)한 우주(宇宙)에 고요히 울려가는 설움이 되라.
—조지훈, 「역사(歷史) 앞에서」
아직은 역사 앞에서
조지훈을 전통 민족 서정에서 구해 내 시민 시인의 반열로 데려온 사람은 김수영입니다.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시인이 우겨대니//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수영이 쓴 「김일성 만세」 일부입니다. 1960년 4·19혁명이 막 일어났던 때입니다. 조지훈은 ‘청록파’의 일원에서 시민 혁명의 맨 앞에 섰습니다. 그가 김수영과 자유에 대해 달리 생각을 품었다 해도 시민의 자유를 김수영과 이야기할 만한 시인이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정지용이 그를 <문장>지에 추천했을 때부터 그는 시민 시인이었을 겁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일제 식민시기에 펼친 민족 시인으로서의 면모 중 우리말에 쏟았던 마음을 그는 기다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곧 해방을 맞으리라는 의지이지요. 이는 백석이 정주 지방 사투리를 시에 장착했던 그리움의 정서와 견줄 만합니다. 나아가 제임스 조이스가 영국 치하에서 아일랜드말로 글을 썼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조지훈의 문학은 보편적입니다.
시 「역사 앞에서」는 1959년 이승만 독재가 종말을 보일 때 출간했던 시집 『역사 앞에서』 중 표제 시입니다. 소수자는 역사 앞에서 늘 패배자입니다. 피로 얼룩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무언가 중얼거리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삶 때문입니다. 미친 듯 살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곧 노래가 되어 만인의 입에서 불리게 될 것을 시인은 믿습니다. 언제가 도래할 내일의 영광이며 보람입니다. 역사 앞에서 시민이 겪는 설움이 저 아득한 우주에까지 가 닿을 것이라 시인은 계시합니다. 시민들의 서러운 이야기가 하늘을 움직여 역사로 이어질 때가 오리라 예언하는 것이지요.
시민 시인으로서 조지훈의 진면모는 이 시보다는 시 「병(炳)에게」에 잘 담겼습니다. 이 시는 1968년 5월 17일 조지훈이 병들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시입니다.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탈복(說服)하려 들다가도/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라고 병을 친구처럼 대하네요.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에서 원수 같은 상어를 친구라 여깁니다. 임화도 시 「적」에서 “적이여 너는 내 최대의 교사,/사랑스러운 것! 너의 이름은 나의 적이다.”라고 노래한 것을 기억하나요. 시민은 살아가기 위해 적과의 동거도 마다하지 않으니 삶은 절실한 것인가 봅니다. 그런데 아직은 슬픔을 기쁨으로 역전시키는 기적이 필요하니 아직은 역사 앞에서 서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