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런 순간들을 나눈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들을 어떤 사람이라고 인식한 것에 앞서 우리가 사용한 말이 가능하게 한 마음이다. 우리가 한 말이 마음을 길어 왔다.”
-김화진, 「회사에서 평어 쓰기」 中(<릿터> 34호 수록)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계질서가 뚜렷한 수직적인 사회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말은 나이와 경력, 지위에 따라 수많은 호칭과 직함으로 자연스레 서열을 나누고, 존댓말과 반말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쓰는 공고한 ‘존비어체계’로 되어 있다. 이런 언어 체계를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뿐이다.
스타트업 등에서는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고자 ‘영어 이름+상호 존댓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영어 이름을 영어식 호칭법으로 부르는 것은 낯설지 않다. 공적인 자리에서 상호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상호 반말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심리적 거부감이 덜하다. 다만 이러한 시도는 한국의 뿌리 깊은 위계질서 문화에 그다지 균열을 내지 못해 종종 허울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새롭게 등장한 ‘평어’는 ‘이름 호칭+반말’ 형태를 띤 상호 존중의 언어다. 쉽게 설명하자면 ‘예의 있는 반말’. 최근 출간된 책 『말 놓을 용기』의 저자 이성민이 디자인 대안학교 ‘디학’에서 처음 시도한 뒤, 여러 학습 공동체, 기업, 학교 등에서 관심을 받아 다양하게 실험되고 있다. 출판사 민음사는 잡지 <릿터> 편집부에서 ‘회사에서 평어 쓰기’를 1년 넘게 지속해 왔다.
회사에서 서로 말 놓기라니. ‘반말’과 ‘평어’는 어떻게 다를까. 저자는 으레 반말과 함께 사용되는 ‘언니’, ‘형’, ‘세영아’, ‘선배’ 등의 호칭이 가족 또는 학교 프레임을 끌고 오기 때문에 ‘성인의 자율적인 사회적 삶’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래서 평어를 디자인할 때 “세영, 밥 먹었어?”와 같이 한국어 호칭에서 이름 뒤에 붙는 ‘아’나 ‘야’를 제거하기로 했다.
“선후배나 형아우 호칭은 수직적 호칭이면서도 또한 친밀성을 내포하는 호칭이다. 어른이 된 사람들도 삭막한 사회생활에서 친밀한 인간관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친밀성에 대한 요구가 평등주의에 대한 요구를 앞서는 한, 수직적 관계 구조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친밀성에 대한 요구가 우리에게 퇴행적인 작은 피난처만을 제공하고 있는 오늘날, ‘문화=문명’이 요구하는 과제를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식 문화’라고 얼버무려지는, 한두 살 차이가 중요한 수직적인 사회 구조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또래 문화를 메마르게 하는데, 사람들은 이 삭막하고 경직된 일상에서도 최소한의 친밀감을 원하기 때문에 가족, 학교 안에서나 쓰는 호칭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평어 실험은 그런 익숙한 위계질서를 빌리는 대신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개인으로서 친밀한 관계와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자, 완전히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다. ‘강의실에서 평어 쓰기’를 시도해 화제가 됐던 김진해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 책이 “동무의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증폭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존비어체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모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를 높이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낮추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동등한 인간으로서 함께하는 모험이다.” 물론 모험은 쉽지 않겠지만, 그 쉽지 않은 과정에 모험의 의미가 있다. 저자는 전쟁과 같이 강렬하고 적대적인 상황에서는 서로 대뜸 반말을 해도 어색하지 않듯, 평등을 전제하는 말인 평어는 ‘모험’이라는 강렬하고도 우호적인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조언한다. 그러니까, 같은 목표를 위해 모험 중인 집단이 있다면 이 흥미로운 언어적 모험을 함께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상황과 언어가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