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 등록된 민간 자격증은 지난 1일 기준 51,373개다. 민간 자격 하나가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는 일은 업계에 별다른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전문 서평가’ 민간 자격은 다소 도발적인 작명으로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서평가가 되는 데에는 등단과 같은 공식 절차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흔히 자격증을 취업에 도움을 주는 ‘스펙 한 줄’로 여기는데, 기존 서평가들이 이미 서평으로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을, 아니 불가능함을 종종 토로해 왔다. 그렇다면 이런 자격증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자격증을 만든 곳은 한국작은출판문화연구소(대표 김새봄)다. 작가, 평론가 등 외부 전문가가 진행하는 지정 교육과정을 1개 이상 이수하고, 오는 12월 이곳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통과하면 자격을 인정받는다. 합격자는 매년 100명 이내로 한정된다. 이 자격을 취득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연구소는 다음 달 온라인 강의와 서점, 웹진이 결합된 플랫폼인 ‘서점 프레스콜’을 오픈해 합격자들이 지속적으로 서평을 발표할 지면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언론사, 출판사, 도서관 등에 자격 취득 사실이 공지되며, 우수 서평가에게는 김새봄 대표가 운영하는 새봄출판사를 통한 출판 기회도 주어져 기고, 강의 등의 추가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교육과정에서는 어떤 내용을 배울까. 현재 와디즈를 통해 단독 공개된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MBC ‘100분 토론’ 진행자인 정준희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 교수를 비롯해 강영숙 소설가, 유이우 시인, 공백 작가 겸 북튜버, 서메리 작가 겸 유튜버, 엄지혜 작가, 황혜경 시인, 윤성은 영화평론가, 아나운서 유튜버 ‘지윤일기’와 ‘채린의쓰임’ 등이 강사로 나서 전문 분야 창작 혹은 강독 수업을 진행한다. 앞으로 ‘출판, 북디자인, 소설의 역사, 시의 역사, 문학평론, 문예지읽기, 음악읽기, 연극읽기, 역사읽기, 글쓰기를 위한 요가’ 등의 과정이 추가로 개설 예정이다. 강의를 직접 들어 본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서평가 양성을 위해 특화된 강의라는 느낌은 없었다.
![현재 개설된 ‘전문 서평가’ 교육과정 강사진 [사진=와디즈 캡처]](/news/photo/202309/109716_79209_5545.png)
“단순히 서평 쓰기를 위한 기교 또는 테크닉을 가르치는 교육 과정이라기보다는, ‘전문 서평가’라는 새로운 개념의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열어갈 수 있도록 인문학적 지식과 글쓰기 능력을 갖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더 많은 일반 독자를 일정 수준 이상의 깊이 있는 독해를 하고, 대중에게 정제된 형태로 가공해 전달할 수 있는 일종의 독서 크리에이터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구상하게 된 배경은 SNS 등에 넘쳐나는 광고성 서평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출판사나 작가는 홍보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거나 무상으로 책을 제공하고, 일부 독자는 그저 책을 공짜로 받기 위해 서평단 신청을 한 뒤 책의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저품질 서평을 양산한다. 김 대표는 이러한 구조를 ‘출판계의 악순환’이라고 표현하며, 변별력 있는 서평을 작성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출판사, 작가, 독자가 자연스럽게 이들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봤다.
“‘전문 서평가’는 사람들에게 독서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사회적‧문화적 기여도가 높은 유망한 신종 직업이다. 또한,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배포되어 오히려 악순환만을 불러일으키는 광고성 서평을 배격하고 출판사, 독자, 작가에게 양질의 서평을 공급하여 출판문화가 더욱 발전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해당 교육과정이 실제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그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사방에 텍스트가 넘쳐나지만 긴 호흡을 가진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시대, 이 자격증은 우리 모두가 충분히 다다를 수 있고 다다라야 할 지성인의 면모를 어둠 속에서 발굴해 ‘신종 직업’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