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닦아 줄게
거울을 닦아 줄게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3.09.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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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구슬픈 울음소리에 왠지 가슴이 묵직했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여인 곁엔 비닐로 만든 빗자루가 건물 한구석에 세워져있다. 아마도 여인은 건물 청소를 하는 미화원인 듯하다.

수년 전 일이다. 그럼에도 마치 엊그제 일처럼 여인 모습이 눈앞에 선명한 것으로 보아 아직은 적잖이 가슴에 온기가 남아있음을 느낀다. 그때 흐느끼던 여인의 실루엣이 요즘도 눈앞에 어른거릴 때마다 여인에 대한 측은지심을 지울 길 없다. 한편 여자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곤 한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왜? 홀로된 여인에겐 이토록 무정할까? 아니, 폄훼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이 여전히 잔존해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이것은 분명 성차별이다.

지인이 운영하는 사무실을 방문하기 위해 몇 해 전 어느 건물을 찾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건물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어느 여인의,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턴 주의할게요”라는 애원조의 말도 그 소리에 섞였다. 이 말에 이끌려 건물 비상계단 위를 살펴봤다.

그 건물 2층 계단 한쪽엔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남자가 내 쪽으로 등을 보인 채 여인을 벽 쪽으로 몰아세운 후 삿대질까지 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몇 분간을 여인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던 그 남자가 드디어 자리를 떴다. 그러자 여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대하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계단을 뛰어올라 여인 곁을 찾았다. 인기척을 느낀 여인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가까스로 들어 잠시 나를 바라본다. 이때 지인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음료수 박스를 뜯어서 말없이 주스를 한 병 여인에게 권했다. 그러자 그것을 받아 든 여인은 목이 말랐었는지 단숨에 마신다.

잠시 울음을 멈춘 그녀는 내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었다. 얼핏 봐도 60대 초반쯤 보이는 여인이었다. 종전에 젊은 남자에게 왜 이런 일을 당했는지 묻자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자신은 3년 전 오랜 세월 병석에 누웠던 남편을 잃었단다. 남편을 병마에 빼앗기자 병수발 하느라 진 빚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게 됐단다. 궁여지책으로 택한 게 건물 미화원이었단다. 그날 청소를 하다가 실수로 화장실 변기 뚜껑을 깨뜨린 게 사단(事端)이란다. 이 사실을 건물 관리자에게 들키자 이토록 호된 질책을 받게 됐다며 한숨을 땅이 꺼지라 내쉰다. 말끝에 그녀는 이곳 건물 관리자의 갑질이 평소에도 매우 심하다고 했다. 심지어 여인이 남편이 없는 것을 용케 알고 매사 둔한 여자라서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심한 말까지 퍼붓기 예사란다.

남편을 잃은 것도 서러운데 타인까지 이것이 무슨 큰 약점이라도 된 양 걸핏하면 들추어서 더욱 속이 상하다고 했다. 누구나 아킬레스건은 있기 마련이다. 불완전한 게 인간 아닌가. 그럼에도 허물이나 약점을 빌미로 타인을 정신적으로 제압하고 공격하는 것은 참으로 비인간적 아닌가. 여인은 건물 관리인이 미화원들에겐 혹독하고 가혹하리만치 부당한 대우를 하면서도 건물 사장한테는 늘 허리를 반쯤 꺾은 채 온갖 아부를 하기 일쑤란다.

그러고 보니 그자는 강자 앞에 무릎 꺾고 약자 위엔 군림하는 치졸한 인품의 소유자인 듯하다. 필자가 고루한 사고방식을 지녀서인지 몰라도 강자보다 약자를 돌아보는 게 진정 사람다운 사람 아닐까? 세상은 참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때론 이해타산에 얽혀 어제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한다. 정의가 불의로 둔갑해도 그것이 원칙인 양 믿게 된 세상이긴 하다. 하지만 약자에 대한 동정심만큼은 지니는 게 사람된 도리 아닌가. 그날 건물 관리자의 인간답지 않은 언행을 대하며 그가 지닌 흐려진 내면의 거울을 당장이라도 깨끗이 닦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천성 고칠 약 없잖은가. 이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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