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시인의 얼굴] 지도에 없는 시인: 권환, 「지도에 없는 아버지」
[시민 시인의 얼굴] 지도에 없는 시인: 권환, 「지도에 없는 아버지」
  • 이민호 시인
  • 승인 2023.09.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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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선생님 이 지도 좀 보세요
누런 여기가 육지
퍼런 저기가 바다라지요
붉은 당사실 같이 꼬불꼬불
놓여있는 이게 기차가는 철도
적은 진주같이 똥골똥골 뀌여 잇는 이게
고을 이름이지요

강아지털처럼 송송한 이것은 산이고
한밤에 별처럼 여기저기 허터져 있는 것은
섬이지요

주구리구 꼬부랑이 외처럼 오고랑해 있는 이게
일본이지요
이 바다는 자꾸자꾸 가면 많은 나라
이 철도로 자꾸자꾸가면 일꾼많은 아라사이지요?

여기가 우리나라
여기가 일본가는 동래부산
여기가 이사짐 많이 가는 북간도
그런데 우리 아버지 계신데는
어델까요
여길까요
저길까요
아모리 찾아도 없어요

―권환, 「지도에 없는 아버지」

지도에 없는 시인

우리나라는 현재 등단 시인만 육만 명에 달하는 시인 공화국입니다. 하늘에 별만큼 많은 시인이 발광(發光)하고 있으니 세상은 얼마나 평화롭고 인간적일까요? 폭압적인 일제 강점기 시인, 작가를 포함 문인은 겨우 백여 명 남짓이었습니다. 비록 숨소리 하나 제대로 낼 수 없이 절망적이었지만 한 가닥 희망을 쉽게 놓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광복을 맞았고 어둠을 견딘 작품이 오늘도 우리를 위로합니다. 이유야 어떻든 이들 중 90% 이상이 북으로 갔습니다. 손에 꼽을 만큼 소수가 남아 현대 문학의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월북 문인들이 소위 복권된 것은 1988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정〇〇, 김〇〇, 백〇, 이〇〇으로 지웠던 이름을 비로소 되찾은 것이지요. 그때부터 정지용, 김기림, 백석, 이용악이라 눈치 보지 않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월북한 사실도 없는데 권〇으로 금기가 되었다 잊힌 시인이 있습니다. 권환입니다.

임화가 우리 문학의 대표 격이라면 권환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시, 소설, 비평, 아동 문학, 연극, 문단 활동 등 참으로 전인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북으로 가지 않고 고향 마산에서 폐결핵을 앓다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한에서 문단과 대학에서 행세했던 문인만이 우리 문학의 전부가 아니기에 그를 다시 불러봅니다. 시 「지도에 없는 아버지」는 1927년 4월 <신소년>에 발표한 동시입니다. 권환의 작품은 소수자의 입장과 현실 부조리를 담아 이념에 경도된 작품이라 쉽게 치부하곤 합니다. 그래서 아이 눈으로 본 세상은 좀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해서 가져왔습니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 지도를 보니 초등학교 때 사회과부도가 떠오릅니다. 한반도 곳곳을 이어 가는 철도망과 지명들을 외웠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이를 두고 일제가 우리나라를 발전시킨 덕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어 씁쓸합니다. 일본 열도를 쭈글쭈글 오그라든 오이로 묘사한 것이 재밌네요. 아라사(러시아)에는 할 일이 많다는 표현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이 시는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나라가 망하고 일제 수탈에 살 수 없어 만주로, 러시아로 떠나 유랑하는 사람들을 아이의 목소리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만, 뜬 구름 같은 삶의 긍정만, 낡은 전통만 노래하는 것이 문학 본령은 아니기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합니다. 유이민(流移民)이 되어 떠도는 아버지처럼 권환도 똑같은 신세가 되어 어딘지 모를 공간을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 문학 지도에서 사라진 그를 다시 불러 세우고 그가 부딪힌 역사를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하고 그가 남긴 작품을 자랑스럽게 읽는 나라,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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