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상 가장 무더웠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을 지나 비로소 가을이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피부에 닿는 공기의 밀도가 벌써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상투적인 말을 곱씹게 되는 날씨다. 일각에서는 가을은 놀러 다니기 좋은 계절이지, 무슨 독서의 계절이냐며 최대 비수기를 극복하기 위한 출판계의 상술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선하고 넉넉한 계절이 잠시 소홀히 했던 독서를 다시 시작할 좋은 핑계가 되어 준다면야.
우리는 왜 독서가 인생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 것일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책을 많이 읽었다고 알려져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지만, 부와 성공을 거머쥔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자가 되는 법, 성공 비법을 다룬 책은 불티나게 팔린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책을 읽으면 성공한다’는 단순한 도식은 언제나 성립하지 않는다.
“열심히 책을 읽는데도 제 인생은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요?”
회원 6,000만명을 보유한 중국의 전자책 앱 ‘판덩독서’의 창업자로서 매년 책 50권 읽기 운동을 펼쳐 온 판덩은 젊은 세대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판덩은 “이는 물 한 잔으로 장작더미에 붙은 불을 끄려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잘라 말하며 “노력이 임계점을 돌파하는 그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가 동양 최고 고전 중 하나인 『맹자』에서 현대인의 삶에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을 추려 쉽게 풀어낸 책 『인생의 저력』에 나오는 이야기다.
맹자는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이 나타나고 부딪혔던 전국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다. 여러 제후국들이 잔인한 전쟁을 벌이던 약육강식의 시기에 ‘군주가 어질면 민심도 저절로 따라온다’며 ‘인(仁)’과 ‘의(義)’를 중시했던 그의 사상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어디에도 등용되지 못하고 낙향해 제자들과 함께 학문에 매진한 결과가 이후 수천 년에 걸쳐 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전하는 책 『맹자』로 남은 것이다.
“오곡은 품종이 좋은 곡물이지만, 충분히 익지 않으면 개피풀만도 못하다”는 맹자의 말에서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학문을 연마한 그만의 끈기와 저력이 느껴진다. 판덩은 이 이치가 우리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도 적용된다며 “하려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게 건강한 몸을 만드는 일이든 학문을 연구하는 일이든 결실을 보기 전까지는 일관된 마음 ‘항심(恒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관된 마음으로 나아가려면, 우선 자신만의 명확한 비전을 세워야겠다. 맹자는 인간의 성취를 두 종류로 구분했다.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명예, 직급, 재물 등을 ‘인작(人爵)’이라 했고, 이와 달리 내면에서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작위를 ‘천작(天爵)’이라 했다. “시인이 되고 싶다면 시를 잘 쓰면 되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선한 행동을 많이 하면 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나의 의지로 행할 수 있다.”
인작과 천작 둘 중 하나만 가져도 세간의 존경을 받지만, 어느 쪽을 얻고자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판덩은 “외부의 환경이나 사물이 우리에게 주는 명예와 영광은 너무나도 쉽게 사라진다”며 ‘천작’에 해당하는 ‘나만의 고결함’을 쫓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조언한다.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면 타인의 존경은 저절로 따라오리라는 것이다.
“귀해지고 싶은 마음은 사람 누구나 다 똑같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귀한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잘 생각하지 못한다” 이 가을, 귀한 시간을 내어 책을 읽기로 결심한 당신에게 건네고 싶은 맹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