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 속의 성찰과 의지 ‘천년무(千年舞)’
고뇌 속의 성찰과 의지 ‘천년무(千年舞)’
  • 안재동
  • 승인 2008.04.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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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양우 시인의 제11시집 ◀
▲     © 독서신문
문학시장 침체와 고령(高齡)에도 불구하고 시창작 의지가 꺾일 줄 모르는, 원로시인이자 계간 <문예춘추> 발행인인 이양우 씨가 시집 『천년무(千年舞)』(문예춘추 刊)를 다시 세상에 선보였다. 그의 열한 번째 시집이다.
술은 둘도 없는 친구라. / 이 친구는 / 내 인생에 보물이라. / 슬플 때는 위로해주고 / 기쁠 때는 축하해 준다네, // 모든 이의 마음결에 / 비단 같은 정을 주니 / 그 누군가 “정다운 주안상 / 맑은 시 한 수면 / 누더기 옷도 곱다” 하였느니라. // 선경세계 드는 길도 / 술이 아니더냐! / 먼지 같은 인생살이 / 술 향기로나 달래보려니, / 술이란 내 친구는 / 천하의 영물이라네,
 ― <주천(酒天)> 전문
시집의 첫 내지에 올린  <주천(酒天)>이란 작품의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다. 李 시인이 지금까지 시를 1만 편이나 넘게 지었다는 후문(後聞)이고 보면, 그 중 이 시 한편을 특별히 책의 첫장 간지에 올린 뜻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또 그다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주법을 알고 술에 취하되 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주신(酒神)이라 불러도 과히 어색하지 않으리라. 시인 역시 시법을 알고 시를 거침 없이 짓되 그 경지가 아무나 범접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시성(詩聖)이라 불리울 수 있으리라.
시의 최고 가치는 메타포의 절묘한 구사와 응용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주천(酒天)>은 곧 그러한 시의 메타포의 객체, 즉 시와 대칭적으로 병치될 수 있는 하나의 시적 대상으로 인식된다. 진정한 술꾼에겐 술이 인생의 전부이듯 이양우 시인에겐 시가 그러한 듯 보인다는 의미이다.
저 천계(天界) / 슬픈 여울 / 천년 묵은 혼 불로 / 너울너울 춤을 추어 / 청산(靑山) 넘어가리라. // 날아서 / 날아서 / 만가(輓歌)네 등을 타고 / 겹겹이 삭을 정(情) / 흙바람 되어 가리라. // 아니 가리 / 아니 가리 / 애절(哀絶)타가 / 지친 넋두리 // 구비 구비 / 서러워라 / 혼 불되어 가리라.
 ― <천년무(千年舞)> 전문
이양우 시인은 1965년 시문학 창간호에 시를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한 시작활동을 전개해 오다가, “50년대 모더니즘 운동은 그대로 침전하고, 60년대 후반에서 싹터 70년대에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논쟁이 있었을 뿐 우리의 문학풍토에는 문학운동이 하나도 없었다.”면서, 2008년초 ‘21세기 전진문학운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 요지는 ‘집단적이건 개인적이건 문명적 견지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절규의 공감을 제시하는 문학’, ‘편협 된 정치적 리얼리즘문학 운동을 지양’, ‘반시적(反詩的), 반문학적 표현 수용 등 새로운 지각변동의 문학 추구’, ‘진실을 담을 수 있는 모든 문학이면 수용’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렇듯, 이 시인은 어찌보면 비상하고 색다른, 그만의 문학관(觀)을 평소 표출하고 있다.
그러하니, 앞서 잠시 언급한 대로 시 <주천(酒天)> 한 수야말로 바로 그의 이미지를 가장 빠르게 형상화시켜주는 매체가 아닐까 한다.
▲     ©독서신문

이 시인은 시집의 첫머리격인 서곡(序曲)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각고 끝에 자서(自序)를 쓴다. 몇 자만 쓴다. 고요한 달밤에 쓴다. 아무도 없는 피라미드 방(집필방)에서 쓴다. 알 잘 낳는 암탉이 알을 낳듯 시인은 시를 잘 낳아야 한다. 유정란(有精卵)을 낳아야만 한다. 꽃을 피워 열매를 잘 맺는 꽃이 있듯 성실한 시를 잘 낳아야 한다. <고독, 번뇌, 깨침>의 세계를...”
그의 시정신이 단번에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한 그의 시정신은 다음 시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숫칠 듯 내뿜는 / 저 분수(噴水)는 / 타는 정(情)에 / 하루거리를 앓듯 / 몸부림치는데 // 온 종일 반복된 / 내 정열은 / 단숨에 베어버릴 / 비수(匕首)로 성을 쌓곤 / 오늘도 무념무상의 / 도를 닦는다. // 마음의 껍질을 벗어야만 / 너를 품으리니 / 솟칠 듯 / 내 뿜는 / 내 집념도 / 도를 넘어서 심장을 찢는다. // 세월은 쉼 없는 것 / 내면에 깔린 사념의 바윗덩이 / 내 도사린 영혼의 살풀이는 / 풀어야 하는 것 / 아아, 내 인생은 / 황혼을 넘어서도 / 살 찢는 그리움, / 사랑의 무지개로 / 가래토시가 선다.
 ― <시인의 정열- 왕성(旺盛)한 시혼>  전문
제1장 ‘시인의 정열’, 제2장 ‘불침(不寢)’, 제3장 ‘꽃댕기’, 제4장 ‘벗어놓고 간 신발’ 등 모두 4장으로 구성된 이 시집에는 107편의 현대시와 1편의 한시(漢詩)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편들의 특징은 서정을 바탕으로 한 자연과 삶의 노래, 그리고 그 이면의 인간 본연적 고뇌 속에 내재한 시인의 성찰과 의지의 발현으로 보인다.
가자가자 어서가자 / 운명 따라 어서가자 // 옹달샘 솟은 물아 / 실개울 내리는 물아 / 절벽에 폭포수로 / 내리치고 / 내리치어, // 도랑물 / 내지나서 / 강지나면 / 만경창파, // 유수(流水)야! / 큰 소원 이룬다 할지면 / 그 어디인들 못 갈까.
 ― <유수(流水)> 전문
시인을 비롯한 작가는 무릇 아름다운 작품을 생산하되 정작 그 자신은 늘 외로고 고독하고 쓸쓸하다 하던가? 시집의 후기에서 이 시인은 “귀뚫어 듣는 소리 무언지 몰라도 끄덕끄덕 거리는 그 모양이라네, 등단 길 출발한지 42년, 어느새 흰 머리칼 날리는 나이는 허탈감으로 감싸여 있고, 인생 객식(客識)낯 설움에도 고요히 황혼 길을 바라보는 바라, 뉘엿뉘엿 내 마음을 쓸어내린다.”면서, 잃는 이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절절한 말을 이어간다. “가슴도 휑하니 서글퍼구나! 바람 끝 애처로운 갈대모양 석양을 등허리에 맨 객인 홀로 방랑과 피로의 보따리를 내려놓는다. 아아, 이 시집 한 권이 내 인생의 끝자락에 매달린 한량없는 ‘꽃망울’일 지라 추녀 끝에 쩔그렁 소리 그 풍경을 울려내는 마음이 되리라.”
이양우 시인은 1941년 충남 보령 주산 출생으로 한때(1959년~1960년) 연화연극을 전공하면서 연극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1965년 《시문학》 창간호에 시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중학교 교장, 경인매일신문사의 초대 사장, 씨알의 소리 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현대시인협회 이사, 국제펜 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 육필문학 보존회 회장, 계간 《문예춘추》와 반년간 《시인과 육필시》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뒤로 그림자를 떨구고 가는 계절』등 시집 10권, 번역서『환단고기』, 장편소설 『육바라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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