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점자 일본어에서 한 칸에 있는 점 여섯 개를 전부 메우면 ‘눈(め)’이라 읽힌다. 일본어 점자를 고안해낸 이시카와 구라지는 이로써 맹인에게 잃어버린 눈 대신에 영혼을 넣어주었단다. 이런 이야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맹학교 초등부에 진학하기 직전에 나는 내 몸의 기능이 주위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나의 학예회 미술작품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였다. “만지면 안 돼”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만지지도 않고 볼 수 있다는 걸까? 그것이 무척 신기했다. <21쪽>
‘평등’을 이루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모든 사람의 최대공약수를 구해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편애하는 것이다. 내게는 후자의 방식이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방법처럼 보인다. <92쪽>
때로는 점자투표지가 담긴 투표함이 잊힌 채 개표되지 않기도 한다. 또 담당자들의 실수로 표가 다른 투표함에 들어가 어쩔 수 없이 무효표가 될 때도 있다. 개표 작업에서 점자는 문자로 읽히지 않고 암호처럼 해독한다. 그리고 점자투표 담당자인데도 점자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점자투표를 할 사람이 온 뒤에야 서두른다. 곧 점자투표 시행 100주년이 된다. 이제 그런 한심한 일은 그만둬야 하지 않겠나! <142쪽>
“역 계단의 손잡이에 붙어 있는 점자가 딱딱한 무언가에 쓸려서 망가진 듯 마모된 것을 가끔 발견한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점자는 점 하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문자가 되어버린다. 특히 숫자는 그 영향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곧 나올 플랫폼의 번호와 노선 정보가 완전히 다르게 바뀌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상황을 알고 의도적으로 벌이는 짓일까? 아니,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과자 포장지 따위로 쓰는 올록볼록한 비닐에 붙은 뽁뽁이를 터뜨리는 듯한 감각이었을 것이다. <234쪽>
[정리=김혜경 기자]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
호리코시 요시하루 지음 | 노수경 옮김 | 김영사 펴냄 | 284쪽 | 1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