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육아하다 쓰러진 이야기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육아하다 쓰러진 이야기
  • 스미레
  • 승인 2023.08.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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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여름을 떠나보낼 때면 그날이 떠오른다. 육아하다 쓰러진 날. 아이가 네 살 때, 바야흐로 각종 육아서를 섭렵하며 그 열정이 태양보다 뜨겁던 시기이다. 나가 놀기 좋아하는 아이와 매일 놀이터에 가고 동네방네를 정처도 없이 쏘다녔다. 어둑해져서 집에 돌아오면 졸려 하는 아이를 간신히 씻기고 먹이고, 그러다 또 쌩쌩해진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다.

덥고 습한 공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신경이 과하게 각성된 탓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입안은 몇 달째 헐어 있고 자주 어지러웠다. 그게 신호였는지 그 주말, 기차를 타러 가는데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고 다리 힘이 풀리며 까무룩 쓰러져 버렸다. 무려, 서울역 한복판에서.

아이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의무실 담당자는 내 안색을 살피며 “다이어트 했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그랬으면 억울하지나 않게요. 원인은 뻔했다. 과로와 일사병. 말 그대로 번 아웃.

열심인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나는 반쪽짜리 엄마였다. 아이만 바라보다가 나를 잊었으니. 아이와의 관계에서 나를 지우고 육아서와 주변의 육아 열기에 각성 되어, 불나방처럼 몸을 던졌다. 육아 외엔 눈 둘 곳도 마음 둘 곳도 없었다. 내 마음을 끌어당기던 그 많은 것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의무와 책임감만 있는 삶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기세로 공부를 했다면 하버드에 갔겠지만 육아하다 쓰러진 건 훈장도 못 된다. 외려 민망했다. 요즘 세상에 아이 키우다 쓰러지는 바보가 있다니! 멍하니 앉아 있는데 “엄마, 많이 아팠어?” 아이가 걱정스레 물어 왔다. “내가 커피 해줄게. 커피 마시면 힘이 날 거예요.”

네 살 꼬맹이의 어른스런 위로. 이런 녀석에게 가만히 좀 있으라고, 조용히 좀 하라고 줬던 핀잔이 무색해진다.

어딘지 슬픈 눈으로 달려온 친정엄마는 내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며 그러신다. “그러게 잘 좀 챙겨 먹지. 네 몸은 네가 챙기는 거야. 좋은 거 있으면 너 먼저 먹고 그다음에 애기 주는 거야. 엄마가 강해야지.”

그렇지. 강해져야지. 제풀에 꺾여 병이 나버리는 엄마가 되진 말아야지. 부랴부랴 지은 보약과 보조제도 효과가 없었다. 한 시간 운동하면 삼 일을 앓아누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느긋해 볼까, 마음을 먹었다. ‘스키너 상자’의 실험 쥐도 레버를 다섯 번 눌러 먹이를 얻으면, 다음 텀은 쉰다는데, 지금의 나는 비유하자면 임신-출산-육아라는 레버를 십만 번쯤 누른 셈이지 않은가. 그런데 신경을 안 쓰려할수록 감도가 높아지는 건 대체 무슨 조화인지.

육아서들에 대한 저항처럼 무심하려 노력했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딴청을 피우면 아이는 뾰족해져서 더 많은 관심과 반응을 요구했다. 엄마가 느긋하면 아이도 느긋해진다는 이야기는 다른 나라 이야기인가 보다. 그런 축복은 대범한 엄마와 순한 아이 조합에서나 가능한 일. 고로 우리와는 먼일이었다. 초조함에 손톱을 물었다. 저항은 곧 소리 없이 철회됐다.

문제는 그거였다.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하고, 무언가 했다 하면 자신을 밀어붙이다 나가떨어지는 악순환의 반복. 번아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책꽂이에 꽂힌 육아서와 자기 계발서를 솎아내었다. 그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던 나를 떠나보내듯 그리하였다.

뽑아낸 책들을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다. 상자 몇 개가 내 손을 떠나던 날, 납덩이처럼 나를 내리누르던 압박도 함께 사라졌다.

쓰러졌던 건 명백한 브레이크였다. 빈집이 황폐해지듯 몸도 마음도 주인인 내가 돌보지 않으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젊다고, 아픈 곳 없다고 안일해선 안 된다. 혹 몸이 아니라 마음이 쓰러지고 있는 건 아닌지 수시로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 오늘, 당신에게도 크고 작은 소동은 생겨날 것이다. 잘 견뎌낼 줄을 믿는다. 그래서 그 소동이 훗날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다정한 추억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취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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