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
물장수가 귓속으로 들어와 내 눈을 열었다
보아라!
까치가 뼈만 남은 나뭇가지에서 울음을 운다.
왜이래?
서리가 덩달아 추녀 끝으로 눈물을 흘리는가.
내야 반가웁기만 하다 오늘은 따습겠구나
-이상화, 「겨울 마음」 전문
눈물 젖은 세상을 버리고 웃는 내게로 와서
“마돈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렇게 붙여 놓아도 알아들을 수 있지요? 이상화의 두 시가 금방 떠오릅니다.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로 시작하는 시 「나의 침실로」 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주제곡 ‘민중의 노래’처럼 들립니다. 남들은 이 시가 퇴폐적 낭만주의의 대표라고 하지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절정을 향해 오를 때 빅토르 위고의 시 「저녁 노을」에서 외쳤던 소리와 자꾸 겹쳐 들립니다. “꿈꾸는 자, 나는 행복했노라, 말없이 난 현장에 있었노라.”
낭만적 퇴폐주의자가 갑자기 민족시인으로 탈바꿈합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외치며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득 걸어만 간다”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의 낭만과 저항은 어디서 왔을까요. 시 「겨울 마음」에서 보았습니다. 이 시는 1926년 1월 <개벽> 65호에 실렸습니다. 「나의 침실로」가 1923년 9월 <백조> 3호에 실렸으니 몇 년 사이입니다. 마돈나를 부르짖던 그의 눈을 뜨게 한 것이 무엇인가요. 물장수의 고단한 삶이며, 먹을 것 없이 겨울을 지내는 까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겨울은 견디기 힘든 시절이지만 겨울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잠시 얼어붙게 하는 것이라고. 겨울 서리도 눈물 흘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인은 겨울인데도 반갑고 마음이 푸근합니다.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두렵지만 봄의 신화는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나요. 상화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마돈나와 봄은 퇴폐적이지도 민족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냥 시민들이며, 시민의 삶일 뿐입니다. 상화는 시민들에게 봄은 온다고 속삭입니다.
하느님을 비웃을 자유가 여기 있고
늙어지지 않는 청춘도 여기 있다
눈물 젖은 세상을 버리고 웃는 내게로 와서
아 생명이 변동에만 있음을 깨쳐 보아라.
-이상화, 「바다의 노래」 부분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