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나란히 여름휴가에 들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부터 6박 7일 일정으로 ‘청해대(靑海臺)’라 불리는 대통령 별장이 자리한 저도에 머물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지난달 29일 가족과 함께 베트남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일 수도권 근교로 떠났다.
그렇다면 이들은 휴가지에 어떤 책을 가져갔을까? 이들이 가져간 책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지도자 독서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읽는 책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직접적인 발언을 하지 않고도 추진하는 정책을 우회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미국 백악관은 전통적으로 해마다 대통령의 휴가 여름 도서 리스트를 발표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SNS를 통해 여름휴가 책 리스트를 공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위대한 협상: 세계사를 바꾼 8개의 협정』, 『세습 자본주의 세대』, 『기본소득 비판』을 챙겨 베트남행에 올랐다. 각각 외교, 복지, 세대론을 키워드로 하는 이 책에서 여당의 정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세습 자본주의 세대』에서는 80년대생 사고에 대한 공감대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위대한 협상』에서는 한미 동맹과 외교 전략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이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 정책의 모순을 짚은 책 『기본소득 비판』을 선택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이 대표는 『난세일기』, 『같이 가면 길이 된다』를 골랐다. 『난세일기』는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담은 책으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민주당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기조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같이 가면 길이 된다』는 이 대표가 지난 5월 경남 양산 ‘평산책방’을 방문했을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추천받아 구매한 책이다. 문 전 대통령이 평산책방을 연 이후 SNS에 처음으로 소개한 책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바라본 한국의 노동 현실에 대해 쓴 책”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집권 후 독서 리스트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 2월 열린 참모 회의에서 『반도체 삼국지』를 언급하며 반도체 후공정 산업 지원을 당부했다고 한다. 『반도체 삼국지』는 반도체공학자이자 첨단산업 분야의 전략가 권석준 교수가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 반도체 산업의 현황과 역사, 그리고 앞으로의 구도와 전망을 삼국지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책이다.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누군가는 인위적인 독서리스트는 쇼일 뿐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책은 국가 지도자의 교양과 품격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그러니까 국민으로서 궁금한 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