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로에서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찾으세요” 장르문학 서점 ‘환상문학’
“동성로에서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찾으세요” 장르문학 서점 ‘환상문학’
  • 한주희 기자
  • 승인 2023.07.29 06: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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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 전문 서점 ‘환상 문학’ 외관
장르문학 전문 서점 ‘환상문학’ 외관 [사진=환상문학]

헛것을 본 걸까? 마법에 걸린 걸까? 늘 시끌벅적하고 북적이는 거리에서 <해리포터>에 나올 법한 마법 상점을 본 것 같다. 책을 뜯어 먹는 염소가 그려진 나무 간판 아래 이질적이지만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체불명의 가게. 그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노이즈 캔슬링 버튼을 누른 것처럼 사방이 고요해지고 은은한 나무 향이 살짝 감돈다. 고풍스러운 엔틱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과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사다리의 존재감에 압도되니 여기가 호그와트 도서관이구나 싶다. 잠깐, 초현실적, 외계문명, 행성탐사, 대재앙… 누군가 손수 적어 붙인 메모가 보인다. 기숙사를 배정해 주는 마법의 모자처럼 원하는 책을 찾아준다는 태블릿도 있다. 그제야 혼미해진 정신을 부여잡고 현실로 돌아온다. 이곳은 지난 2월 대구 동성로에 오픈한 장르문학 전문 서점 ‘환상문학’이다.

“안녕하세요. 환상문학 책방지기입니다. 책을 고르는 시간의 집중을 방해할까 염려해 눈 마주침과 말 건넴을 삼가고 있습니다. 다만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편히 말씀해 주세요.”

손글씨로 적은 키워드가 붙어 있는 '환상문학' 서가
손글씨로 적은 키워드가 붙어 있는 '환상문학' 서가 [사진=환상문학]

Q. 흔히 장르문학 하면 SF, 미스터리, 스릴러, 판타지, 호러 등을 떠올리는데요. 장르문학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책을 통해 꼭 무언가를 배우려 하지 않아도 부담 없이 즐겁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점이 장르문학의 매력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현실이 보여줄 수 없는 진실한 영역을 상상해 내는 이야기들은 처음 책을 읽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설렙니다.”

Q. 출판업계 불황 속에서 장르문학 전문 서점을 창업하시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장르문학 서점을 차려야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계기를 알려주세요.

“건강이 안 좋아서 원래 세웠던 계획이 무너지고 회복하던 중 자연스레 책방 생각이 났습니다. 늘 장르문학 서점에 대한 갈망이 있었거든요. 인문학이나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은 많지만, 장르문학만 모아 둔 책방은 많이 없더라고요. 대형서점의 장르문학 코너에 대한 아쉬움도 한몫 거들었죠. 신간 위주로 진열해 두어 좋은 고전 작품들도 없거니와 시리즈물도 1, 2편으로 잘려 있는 경우도 있고요.”

Q. 그래서인지 책이 체계적이고 매력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가를 구성하실 때 어떤 점에 신경 쓰셨나요?

“장르의 대표작을 통해 역사성을 담으려 했습니다. 세계 SF 3대 거장, 세계 3대 판타지 문학,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 국내 SF 계보를 잇는 작가들, 세대별로 읽었던 한국 판타지 시리즈물, 본격-사회파-느와르, 하드보일드-신본격으로 변화했던 미스터리, 그리고 고전들이 그러합니다. 책방 문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느끼실 수 있도록 대중적인 작품들도 많이 채워두었습니다.”

‘환상문학’의 포토존, 외서에 둘러싸인 거울
‘환상문학’의 포토존, 외서에 둘러싸인 거울 [사진=환상문학]

Q. 인테리어에 대한 질문을 빼놓을 수 없죠! 목재 인테리어, 커다란 사다리, 아늑한 조명 외, 서로 둘러싸인 거울, 타자기, 영화 필름과 포스터 등 장르문학 서점에 걸맞은 공간입니다.

“책방을 찾아주시는 분들께 책방을 방문한다는 일이 특별하고 좋은 경험이자 추억이 되게끔 하고 싶었어요. 인테리어 컨셉은 해리포터 풍이었습니다. 9와 4분의 3 승강장을 통과할 때처럼 책방 문턱을 넘었을 때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느낌을 받으셨다면 좋겠습니다.”

Q. 이곳을 둘러보면 왠지 비밀 공간이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데요. 혹시 진짜 있나요?

“비밀 공간은 없지만 마음이 통하는 책 한 권을 발견하셨다면 숨겨진 비밀을 찾은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 사다리는 움직이거나 올라가실 수 있어요.”

키워드로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주는 ‘키워드픽’ 태블릿 [사진=환상문학]
키워드로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주는 ‘키워드픽’ 태블릿 [사진=환상문학]

Q. 키워드로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 주는 태블릿이 있더라고요. 손글씨로 적은 키워드를 책장에 붙여 놓기도 하셨고요. 이러한 ‘키워드픽’을 위해 카테고리는 직접 분류하신 건가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요.

“책을 고르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기 위해 직접 분류했습니다. 재밌게 본 책과 비슷한 느낌의 책을 찾으실 때, 흥미로운 소재가 있는지 살펴보실 때처럼 이 많은 책 중 여러분의 취향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도움이 되신다면 기쁠 겁니다.”

Q. 독자분들에게 책을 추천해 주시는 일을 하시면서 노하우가 쌓이셨을 것 같습니다. 책 고르는 것을 돕기 위해 어떤 식으로 접근하시나요?

“어떠한 특정 유형의 책을 읽고 싶으신 경우를 제외하고는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 드리려 노력합니다. 어떤 작품을 재밌게 읽었는지,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지 물으며 그와 결이 맞는 작품을 소개하죠. 한 권을 콕 집어 드리기보단 여러 권을 골라 드린 후 직접 읽어 보시고 결정하시길 권합니다. 관심 가는 책이 있으신 경우에는 간단한 내용 소개, 작품의 특이점 같은 부분을 더 설명해 드리기도 합니다.”

‘환상문학’에서 책을 구매하면 찍어주는 실링 왁스
‘환상문학’에서 책을 구매하면 찍어주는 실링 왁스 [사진=환상문학]

Q. ‘환상문학’에 다녀간 독자들이 쇼핑백에 찍어주시는 실링 왁스에 매우 만족해하시더라고요. 실링 왁스를 받기 위해서라도 책을 사고 싶다는 분도 계세요.

“실링 왁스는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도한 것입니다. 특이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권의 책을 만나는 일이 그만큼 특별한 일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Q. 요즘 전자책 시장이 많이 활성화됐는데요. 특히 장르문학은 전자책으로 많이 보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종이책을 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게 종이책이란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져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책의 무게, 페이지를 넘길 때의 감촉과 소리, 종이 냄새, 페이지를 넘겨가며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는 느낌, 책장에 꽂혀 있을 때 주는 소유의 만족감 같은 책의 물성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기억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인상적인 부분의 페이지는 기억하기 어렵지만 책의 어떤 부분을 펼치면 나오는지는 훨씬 기억하기 쉽거든요. 또 책을 읽을 때도 앞뒤를 뒤적거리며 내용을 확인하기도 좋고요.”

Q. 마지막으로 ‘환상문학’을 찾아주시는 독자님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알음알음 찾아와 주시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동네 서점이 운영될 수 있는 것은 전부 일부러 발걸음 하면서까지 책을 사러 찾아주시는 분들 덕입니다.”

‘환상문학’의 굿즈
‘환상문학’의 굿즈 [사진=환상문학]

인테리어, 큐레이션, 키워드픽, 실링 왁스 외에도 ‘환상문학’을 찾아야 할 이유는 많다. 정기적으로 독서 모임을 열고 있으며 지역 작가와의 만남도 마련할 예정이다. 책 구매 시 제공되는 메모지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해 오면 재방문 시 10% 할인 혜택을 주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책 한 권을 추천해달라는 마지막 질문에 책방지기는 이렇게 답했다. “장르라고 묶어 이야기하지만 미스터리를 좋아해도 SF를 좋아하진 않으실 수 있는 것처럼 여러분의 시간과 취향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쉽사리 질문에 답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조금 더 상세히 여쭙고 책을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양해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색하게도 이 우문현답에 우리가 ‘환상문학’을 찾아야 하는 모든 이유가 담겨 있다. 낯설지만 매혹적인 장르 세계의 문을 열고 싶다면, 책방지기와 함께 취향을 발견하는 여정을 떠나보자. 스크롤로는 다다를 수 없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마주할 것이다. 장르문학 전문 서점 ‘환상문학’은 9와 4분의 3 승강장 너머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환상문학’의 로고, 책을 뜯어 먹는 염소
‘환상문학’의 로고, 책을 뜯어 먹는 염소 [사진=환상문학]

[독서신문 한주희 기자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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