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한 곡 속에도 시대가 지닌 조류가 반영돼 있다. 이로 보아 유행가를 일러 당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이는 세태 풍속이 유행가에 내재돼 있어서일 게다. 또한 대중가요도 미술, 문학, 음악 예술 못지않게 우리 마음에 감흥을 안겨주고 위무도 해 주잖은가. 일례로 슬플 때 경쾌한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면 마음이 밝아진다. 한편 우울할 때 슬픈 곡조인 유행가를 들으면 더욱 침울하다. 이에 무심히 들어온 유행가 한 곡조도 인간 심리 작용에 적잖이 영향을 끼치는 게 분명하다. 평소 록이나 랩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이다. 언제부터인가 트로트가 다시금 이들 마음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방송 매체에 젊은이들이 대거 출연, 대중가요 가수로 입문을 하는 게 그것이다.
한때 트롯이 젊은이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도 했으나 다시금 회자되는 연유는 무엇일까. 이는 유행가에 내재한 3박자 내지 4박자 노래가 우리 민족 정서에 부합돼서인가 보다. 이게 아니어도 유행가를 입 속으로 흥얼거리노라면 애조 띤 음색도 그러려니와 어느 대중가요 가사는 음미할수록 시적인 감흥마저 안겨준다.
집 앞 호숫가 둘레길을 산책할 때마다 스마트폰을 통하여 유행가를 자주 듣곤 한다. 어느 날 모 가수가 부른 ‘뜨거운 안녕’이라는 노래를 듣자 문득 25년 전 일이 생각났다. 지인인 그녀는 성품이 매우 반듯했다. 특히 애주가로서 낭만과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멋도 지녔었다. 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허스키한 음성으로 그녀가 들려주던 ‘뜨거운 안녕’이란 노래다. 이 유행가는 듣는 이로 하여금 왠지 모를 우수에 젖게 하였다.
그녀는 항상 애절한 눈빛으로 이 노랠 불렀다. 여인은 성실해 뵈는 남편과 두 자녀를 둔 단란하고 오붓한 가정을 둔 주부였다. 처음엔 그녀가 그리 행복한 줄 알았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시내 모 술집에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술 마시는 일보다 유독 그 분위기를 선호하는 필자다. 무엇보다 그녀와 벌이는 술좌석이 왠지 즐거웠다. 이날도 여인은 막걸리 몇 병을 큰 사기 사발에 따라 혼자 다 마셨다.
취기가 오른 듯 그녀는 벌건 얼굴로 묻지도 않는 말을 내게 토로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휘두르는 폭력에 심신이 망가지고 있다는 뜻밖의 하소연을 해 왔다. 현재 아이들은 전처소생이라고 했다. 자신은 온갖 불미스런 일로 얼룩진 남편 과거를 잘 알면서도 결혼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녀를 마치 친어머니처럼 따른다고 했다. 그러나 늘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이혼한 전처가 자신 몰래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란다. 심지어는 남편도 만난다는 것이다. 이 점이 못내 불편하고 속상하다고 푸념을 할 때마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이란다. 이때 그녀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채 말없이 경청만 할 뿐이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그녀로부터 소식이 단절됐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세상을 하직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그녀 죽음을 접하며 ‘사랑과 결혼’에 관해 모처럼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전보다 향상됐다. 하지만 아직도 여자는 남자로부터 인생을 지배받는단 말인가’를 고뇌하노라니 결코 남녀 사랑이 달콤한 것만은 아니란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인생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노라면 인간이 겪는 행, 불행이 실은 남녀 사랑에 기인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그녀도 차라리 애초,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자살에 이르는 비극은 맞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아이가 딸린 이혼남과 처녀 신분으로 결혼을 하기까진, 조건보다 당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의미 아닌가.
그럼에도 여인 남편은 참으로 비정했다. 남자는 그녀가 자신에게 쏟은 순정에 감사하기는커녕 걸핏하면 기만했잖은가. 또한 폭력으로써 자신을 향한 진실한 아내의 사랑을 능욕했다. 그러고 보니 평소 그녀 애창곡인 ‘뜨거운 안녕’이란 노래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닌 듯하다. 오죽하면 이 노래를 부른 가수조차 자신이 이 곡을 레코드판에 녹음을 하며 울먹일 정도랄까. 그 가수 역시 몇 번 결혼에 실패했다고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고백했잖은가.